철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본 과학 이론
저는 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다가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꿨는데요. 인문학에서 기초과학까지 저를 이끈 계기는 바로 '진리'의 탐구였습니다. 불변하는 참된 이치, 그것에 대한 열망이었달까요. 그런데 오히려 배우면 배울수록 전혀 모르겠습니다. '전혀 모르겠다'는 말이 사실 이 글의 주제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과학은 첨단 산업의 핵심에 있습니다. 국가 주도하에 거대한 규모로 과학기술이 연구되고 있으며, 인간 삶에 놓여진 많은 난제들을 해결하고 국가 경쟁력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셈입니다. 과학은 이처럼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학문입니다.
이러한 과학이 무엇이냐고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과학인지에 대한 논쟁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잘 합의된 과학의 특징은 대략 이렇습니다. 측정과 실험의 방법을 사용하고, 자연 세계를 연구하며, 인과관계를 설명하고자하는 학문. 일단 이정도로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자연 세계를 실험, 측정하여 설명하는 과학. 그렇다면 이 과학은 정말 '참된 불변의 이치',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과학이 가진 오늘날의 지위를 보면 의심정도는 해볼 수 있으니까요. 특히 저는과학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단위를 다루는, 물리학을 예시로 한 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서구 사회는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를 지나, 과학 혁명의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종교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는 시대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물리학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뉴턴'조차도 사실은 신학을 메인으로 연구했으며, 자연과학은 부수적으로 한 취미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뉴턴은 신의 섭리는 수학의 언어로 숨겨져 있으며, 이를 탐구해서 알아낸다는 관점으로 출발합니다.
이 때의 물리학은 '복잡한 자연 현상에는 단순한 원리가 숨겨져 있으며, 그 원리를 발견하기만 하면 된다'는 입장에 가까웠습니다. 뉴턴이 그의 3법칙을 정립한 것으로부터 본격적인 과학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 3법칙을 기반으로 하여 행성, 달, 태양계의 운동을 보다 단순한 원리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뉴턴의 3법칙을 바탕으로 행성 운동을 쉽고도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점차 알려지면서, 인간은 자연을 정복, 이해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 뉴턴의 3법칙이 발표된 것이 1789년으로, 이 시기부터 대략 1900년까지의 물리학을 고전 물리학이라고 합니다. '고전 물리학'은 뉴턴의 관점을 이어받아서, 자연에 숨겨진 원리를 계속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맥스웰에 이르러서 '전기와 자기'에 대한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물리학의 발전은 끝났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습니다. 더 이상 발견할 것이 없으며, '이제 물리학이 할 일은 측정을 정확하게해서 소숫점 자리를 늘리는 일 뿐'이라고 공언한 학자도 있었습니다. 물리학이라는 건물은 완성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기존의 고전 물리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완성된 것처럼 보였던 물리학의 탄탄한 건물에 마치 기둥이라도 빠진듯 허점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우선 1905년의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기존 물리학의 상식은 도전을 받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의 펀치는 고전 물리학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시공간개념을 완전히 바꿔놓게 됩니다.
하지만 물리학 건물의 붕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진리'라고 받아들여질만큼 깔끔했던 빛 이론이 공격받게 됩니다. 맥스웰이 생각했던 '빛은 파동이다'는 개념이 도전받게 된 것입니다. 빛이 파동이라고 전제해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서, 빛이 입자적 특징을 띈다고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구멍이 뚫린 건물은 속수무책으로 계속 구멍이 뚫려갔습니다. 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원자'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물질이 입자가 아니라 파동의 형태라는 주장이 출현합니다.
한술 더 떠볼까요. 드디어 그 논란의 양자역학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양자역학에 따르면 물질은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을 띄고 있게 됩니다. 게다가 더 심각한 것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구조였습니다. 양자역학의 수학적 구조에 따르면, 물질의 상태에 대응되는 수학적인 해가 하나가 아닙니다. 다른 말로하면, 물질이 여러가지 상태로 공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물리학자들이 1927년에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물리학자란 물리학자가 모두 모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이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측정하기 전에는, 물질의 상태에 대응되는 파동함수가 중첩되어 있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측정이라는 행위의 정의를 송두리째 뒤바꿔 놓습니다. 기존에는 자연이 어떤 상태에 고정적으로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찾기만 하면(측정) 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의 결론은 자연이 어떠한 상태로 존재하는지 정해져있지 않고, 각각의 상태가 확률로서 존재하다가 우리가 측정하는 그 순간에 결정된다는 관점인겁니다. 당연히 이 비상식적인 결론에 반발하는 학자도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아는 그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로 반박했습니다. 물리학자들이 내린 이 결론을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하는데요. 그 결론이 가져온 논란과 아인슈타인의 반발이 무색하게도, 양자역학과 코펜하겐 해석은 주류로 자리잡아 오늘날 물리학의 수많은 연구 대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의 역사만 돌이켜봐도, 진리에 대한 관념은 시대에 따라서 변화해 온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아마 지금까지 읽으신 여러분들도 각기 나름의 입장이 있으실텐데요. 진리에 대한 입장은 크게 세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실재론(낙관론)입니다. 실재론은 '고전 물리학'이 가졌던 관점과 흡사합니다. 불변의 진리는 인간의 지식과 상관 없이 분명히 실재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실재론자들은 이론적, 그리고 인간이 가진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기만 하면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재론 자체는 지금도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예시로, 인간의 측정, 혹은 인식을 벗어난 진리 자체가 실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발견하고, 설명하고, 이해하는 대상은 모두 우리의 감각기관 및 언어체계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일텐데요. 정말 이것들의 한계 바깥에 있는 진리라는 것이 실재할 수 있는지, 있다고 해도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겠습니다. 그것들은 인식의 바깥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칸트라는 철학자가 제기했던 문제입니다.
두번째는 비실재론(비관론)입니다. 우리의 측정, 지식, 이해와 상관 없는 진리는 존재하지 않거나, 혹시 존재하더라도 발견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우선 우리는 우리가 가진 측정, 관측, 그리고 감각의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한계를 벗어난 논의를 하게된다면 그것은 과학이라기보단 형이상학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 말하는 것 자체는 자유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비관론자들은 그렇게 아무리 입아프게 얘기해봤자 진리 자체는 아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온 지식들은,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나름의 해석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정교한 설명은 가능하겠지만, 절대로 진리에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마치 시각장애인에게 코끼리를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리 설명이 정교할지라도, 그 분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상은 코끼리의 실제 코끼리의 모습과 일치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세 번째는 실용적 성격을 지니는 절충안입니다. 우리가 실제 진리가 존재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것들이 의미가 있다는 관점입니다. 진리 자체의 문제가 해결 불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모델과 이론들이 나름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지식을 통해서 설명하던 것이 점점 정교해지고 정교해질수록, '진리'는 몰라도 지식의 범위는 넓어질 것이라는 생각인데요. 오늘날의 과학은 이쪽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학자마다 전부 생각이 다르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제가 느끼기에 오늘날의 과학은, '진리'자체를 발견하는 활동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과학적인 방법으로 아직까지 설명되지 않은 문제를 발견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 후, 한정된 자원과 이론, 정보를 바탕으로해서 좀더 단순하고 통합적인 원리로 현상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다음엔 이 이론이 정말로 타당한지 수많은 실험을 통해서 검증하는 작업도 합니다. 그렇게 문제를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과학의 이론과 설명체계, 그리고 응용 기술들이 탄탄해져갑니다.
과학자들의 활동이 정교해지면 정교해질수록, 우리는 우주의 비밀을 비롯한 모든 숨겨진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 모든 활동이 삽질일까요? 삽질일지라도 의미있는 삽질이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기준으로 그것을 판단해야할까요? 이렇게 많은 의문이 남겨져있는 영역이기에, 과학 자체가 정치적, 사회적 네트워크의 산물이 될 수밖에 없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