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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Dec 10. 2020

버리지 못하는 물건

노래는 멈췄습니다만

젊은 시절 아빠가 술을 좋아한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 전극과 하루 종일 씨름하던 전기기술자 아빠에게 술이란 일종의 긴장을 풀어주는 친구였고, 해방구였음을 어린 나이에도 느낄 수 있었다.


정작 엄마를 힘들게 한 것은, 술 한 잔 후 집 앞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어오는 아빠였다. 

"큐~ 하게 나온나"

그 말이면 엄마는 말없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몇 만 원이 든 지갑을 들고 홀연히 집을 나섰다. 그렇게 구청 옆 금영 노래방에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노래를 부르는 아빠였다. 본인의 흥에 취해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면 듣는 것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그 시절 우리 남매는 초등학생이라 다음날 등교를 위해 집을 지켰고 자정을 넘어서야 귀가한 부모님의 동선을 조용히 느껴볼 뿐이었다. 노래하느라 허기가 진 아빠를 위해 라면을 끓이는 엄마의 움직임 같은 것을 말이다.


술 한 잔 하면 꼭 "큐~"를 외치시던 아빠는, 어느 날 가정용 노래방 기기와 스피커를 사 들고 오셨다. 마치 데스크톱 컴퓨터 본체처럼 생긴 그것은 노래방에 놓인 것과 다르지 않았고, 케이블 선을 이용해 TV에 연결하니 흡사 지니의 요술램프처럼 거실은 노래방으로 탈바꿈되었다.


노래방 기기는 아빠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가 놀러 오는 날, 비장의 무기처럼 노래방 기기를 켜고 친구와 마이크를 나눠 잡고 노래를 불렀다. 


"나의 바다야, 나의 하늘아, 나를 안고서 그렇게 잠들면 돼~" 하며 UP가 되었고, 

"난 너를 믿었던 만큼 난 내 친구도 믿었기에~" 하며 잘못된 만남의 주인공처럼 목청을 높이곤 했다.


차가운 맥주가 목으로 벌컥벌컥 넘어가며 아빠의 고단한 하루도 씻겨 내려가는 듯한 날들이 갑작스레 막을 내린 것은 다름 아닌 아빠가 오른 발의 불편함을 느끼면서부터였다. 병원에서는 혈액 내 요산 수치가 높아져 발생하는 질환, 즉 '통풍'이 엄지발가락 바깥쪽으로 발병했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매일 맥주를 마시는 습관을 고쳐야 한다는 진단을 내렸다. 베란다의 12개 들이 짜리 맥주 박스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와 함께 아빠의 "큐"는 더 이상 울려 퍼지지 않았다.


2층 단독주택의 장점을 누리며 거실 노래방을 소환하던 시절도 지나가고, 부모님은 2층 주택의 1층을 비우고 그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하셨다. 잠자는 숲 속 공주의 성처럼 2층 집은 어느 시절을 봉인한 듯 모든 것이 잠든 모습처럼 남겨졌다.


작년 겨울 수원에서 외사촌의 결혼식이 있었고 우리 식구들은 외가에서 대절한 45인승 고속버스를 타고 결혼식에 다녀오게 되었다.


모든 행사가 끝이 나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혼주님의 인사말이 이어졌고, 마이크는 돌고 돌아 어느새 아빠의 손에 들려 있었다. 


화면에 733번의 숫자와 함께 칠갑산이라는 노래가 전주를 타며 흘려 퍼졌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하면서 구슬픈 첫 소절이 이어졌고, 나는 처음으로 술 취하지 않은 아빠의 노래를 들었다.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노랫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빠의 가슴속 노래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2층을 들락거릴 때면 거실에 자리만 차지하는 구식 TV와 노래방 기기를 싹 정리해버리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이제는 아빠가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마이크를 잡는 시절은 오지 않으리란 것을 나도 안다. 

술이 아니라, 아빠가 인생에 흥이 겨워 이 낡은 노래방 기기를 켜고 마이크를 한 손에 쥔 채 지긋이 눈을 감고 노래할 그날은 아직 남아있지 않을까? 그런 날을 기다리며 바짝 말라 한 켠에 걸려 있는 손걸레를 들고 조용히 수납장과 노래방 기기를 닦아 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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