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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Nov 21. 2020

둘째는 거저 키운다더니

둘째 낳을까요, 말까요?

첫 아이를 함께 키우며 신혼부부는 전우애를 나누는 진정한 동반자가 된다.


이 혹한기 훈련에(밤잠 제대로 못 자고, 끼니 제대로 못 챙기는) 어느덧 적응이 되어갈 때 즈음, 우리는 또 고민한다. 둘째는 어느 정도 터울이 좋을까?


첫째는 어두워지면 잠들고, 주는대로 넙죽넙죽 잘 받아 먹는 아이였기에 육아라는 첫 단계에 발을 내디딘 나는 엄마 역할과 페어링이 잘 된 반면에 <내 맘대로(내 쪼대로) 살 거야>를 외칠 수 있는 인생의 막이 내렸다는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아이를 씻기고 난 후 펑펑 울곤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첫째와 둘째 터울이 5살 이상 났으면 좋겠어, 왜냐면 조금 숨 좀 돌리며 달려온 길도 돌아보고 싶고, 여유를 갖고 싶어, 그리고 (멀쩡해 보이지만) 몸도 아직 성치 않은 느낌이고.>라고 의견을 전달했고,


남편은 <아이 터울이 길어지면 육아가 더 힘들 텐데, 키울 때 같이 키워야지, 큰 아이 5-6세 때 다시 처음부터 신생아 보는 게 더 어렵지 않겠어? 그땐 우리 둘 나이도 지금보다 더 많아질텐데.>

라는 의견을 고수하면서 결정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밀당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의외의 복병은 바로 '단유'였다.


이유식도 잘 먹었고 별일 없이 저녁잠도 잘 자는 첫째였기에 14개월 차가 되던, 새해 1월 첫 주 단유를 하였다.


첫째 모유수유로 인해 자동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달걸이는 휴업상태였는데, (신비롭고 과학적인 엄마의 몸, 모유수유에 달걸이까지 같이 한다면 엄마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 엄격하고 정직한 몸은 단유를 하자마자 달걸이를 소환하는 것이다.


결정적 사실은 이 달의 달걸이가 있기 전에 다시 휴업상태가 되었음을 알았는데, ( 단유와 달걸이 즉각 소환기간에 둘째가 들어선 것이었다(!!!)


터울이고 뭐고 고민을 채 마치지도  못한 채 둘째는 우리의 인생에 등장했고, 그렇게 14개월에 단유한 첫째 형아의 뒤를 이은 둘째가 그로부터 10개월 후 탄생했다. 짠 듯이(소름) 24개월 터울의, 이미 태어나기 전 별빛 속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10월의 단풍이 시작되는 시기가 될 때 태어난 첫째와 둘째.


둘째를 낳기 전 앞 날의 희망을 잔뜩 심어준 친정엄마는 <너 봐라, 느그 오빠야가 그- 렇게 말썽꾸러기에다가 이마고 턱이고 성한데 없이 부딪치고 찢기고, 엄마가 엉덩이 한 번 붙이고 앉아 쉰 기억이 없는데, 너는 그- 렇게 얌전해서 엄마가 얼마나 수월하게 키웠는지 모른다-> 하면서, 둘째는 거저 키운다는 말을 그렇게 해주셨는데.


100일의 기적이 웬 말, 100일의 심한 태열로 성모병원에 둘째가 입원을 하면서부터, 내 인생이 쉽게 풀리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그로부터 대단한 알레르기성 체질과 그와 콜라보를 이루는 아토피성 피부로 인해 정말 끝없는 어둠의 터널을 걷게 되었다.


그런 둘째를 키우며 얼마나 마음으로 울었는지, 세상을 미워하고, 모든 사람들을 증오하며, 매일 좌절하고, 매일 밤이면 이부자리 위에 스러지는 날들이었는데, 그런 나에게도 어느새 <세상은 살만하다>라는 생각이 종종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큰 아이가 학교에 가고 작은 아이는 그런 형아를 기다리는 생활을 이어가는데, 둘이 만나서 하모니를 이루는 하루의 아름다운 시간을 만나게 되면 어느새 <그래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지, 아름다운 인생이야>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는 그런 것 같다.


2살 터울, (후덜덜) 연년생 아이를 키우게 되면 아이 둘이 아직 어린 시절인 3, 4세 때는 정말 체력도 정신도 남아나질 않는다. (누가 등 떠밀어 낳은 것도 아닌데 세상 모든 사람들을 미워하게 되는.) 그런데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5-6세 정도만 되어도 둘이 같이 놀며 나, 너, 우리를 인지하게 될 때 즈음, 그냥 둬도 잘 굴러가는 일상을 볼 때, 더 이상 내가 괴물이 되지 않아도 되고, 카봇의 악당이 되지 않아도 될 때, "카봇 플러스~" 구호에 4단 합체를 해주고 "카봇 마이너스~"에 합체 로봇을 분해해줘도 되지 않아도 되는 때.


두 아이가 서로 역할을 맡아 노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래 둘은 있어야지>, 그래야 집에서도 친구가 되고,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고 잘 어울려 놀지, 하는 조삼모사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둘째 낳을까요? 말까요?

소설가 이외수 님의 글을 빌리자면,

<인생은 못 먹어도 고(苦)> 아닐까,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옆에서 타이머에 맞춰 퍼즐맞추기를 하며 입으로 끊임없이 배경음악을 만들어내는 아이 둘을 흘깃 쳐다보며, 아이를 돌보는 모든 엄마들에게 존경을 보내고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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