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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오드 Jan 01. 2021

또 책상이?

아들은 책상이 도착한다는 말에 이렇게 물었다

책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남편의 책상이었다.

결혼할 때 아빠의 트럭에 싣고 온, 결혼 전 남편의 방에 있던 책장과 책상이 한 세트로 움직이는, 어른 둘이 겨우 들 수 있는 책상이었다.


3번의 이사에도 살아남은 책상은 올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며, 그래도 책상은 당장 필요치 않지? 했지만, 온라인 개학과 연이은 온라인 수업들에 본인 몫의 책상과 컴퓨터(or 화상수업이 가능한 노트북)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작은 방은 남편의 설계하에 책상이 두 개인 공부방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책상 2개와 2층 침대를 욱여 넣은 작은 방. 보이지 않지만 벽면으로 책장도 3개 서 있는 해리포터 속 9와 4분의 3정거장 같은 방.

남편의 공간과 아이 공간을 분리시키면 간단한 일이지만, 우리 집은 옛 24평형으로 방이 단 '2개'가 존재한다. 어쩔 수 없는 적과의 동침이랄까. 온라인 개학을 한 아이는 재택근무하게 된 아빠와 방 하나를 두고 경쟁하는 모종의 관계랄까, 공간을 쉐어하게 된 룸메이트 관계랄까. 여하튼 그렇게 수업과 근무는 한 공간에서 같이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 집에 오면 사람들이 늘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집에 TV가 없네요?>


그렇다. TV가 없다. 왜 없냐면? 처음부터 없었다. 결혼하면서 당연히 TV를 안 샀고, 그래서 지금까지 없다. (전기세 고지서에 TV수신료가 -2500으로(차감되어) 나온다. 수신하지 않기에 수신료도 당연 안 낸다. 한전에서 확인차 방문했던 적이 있다.)


TV가 없으면 또 함께 없는 것이 있다. 소파도 없다.

그래서 거실이 뭔가 허전하다. 우리는 여기를 채우기로 했다. 바로

카페에 놓여 있는 장엄한 원목테이블을 볼 때마다, '아 저걸 우리집에 가져다놔야하는데' 하는 긴 탄식을 내뱉는다.

스타벅스 한가운데 놓인 오크나무 테이블 같은 멋드러진 작업 테이블로.


그런데 생각보다 '멋드러진' 테이블은 너무도 비쌌다. 우리 예산을 비웃는 테이블의 위엄에,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집에는 원목 식탁이 하나 있었고, 여기에 같은 사이즈의 식탁을 하나 더 주문해서 붙이기로. 그래서

이상하게 밥 먹을때는 한쪽에 몰려서 먹게 된다.

거실에는 두 개의 식탁이 나란히 붙어서 8개의 좌석이 이용 가능하다. 우리가 생각한 그림은 한 식탁에서 우리(엄마, 아빠)가 앉아서 무언가를 하면, (무언가는 주로 책 읽기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나머지 빈 식탁에서 역할 놀이, 숙제, 보드게임 등을 하는 것이다. 


방과 거실 곳곳에 놓인 책상과 식탁에서 자유롭게 작업(?)을 하자 anything you want!


여하튼 작디 작은 집에 책상이란 것이 곳곳에 배치되었으니 이제 공부만 하면 되는데...


내가 설령 진지하게 글쓰기 중이더라도, 아이들은 <어, 엄마 컴퓨터 하네?>라는 인식을 갖는다. 참 어렵다. 나름 엄마의 일인데... 하소연하기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작업하기를 택했다. 

아이들 시선이 잘 닿지 않는 주방 한편에 앉은뱅이 노트북 책상을 펴놓고 타닥타닥 타닥.


이를 지켜보는 남편은 또 줄자를 꺼내들더니 거실 에어컨 옆 공간을 잰다. 그러고 3일 뒤 리바트 책상이 도착했다. 

<허리 아플 것 같아서>

진짜 마음은 눈물 나게 고마운데, 그럼 우리 거실 정체성은?


그래서 우리 집은 TV, 소파가 없는 대신 식탁이 2개이며 공간마다 책상이 하나씩 놓인 거대한 작업실이 되었다.

얘들아 너네 한컴타자연습 pc좀 옮겨줄래. 내 노트북 좀 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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