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의 전반부를 '무엇이 되어야 한다.'라는 목표와 기대 속에서 살아간다.
더 나은 성과, 더 높은 자리, 더 완벽한 나를 위해 산다.
하지만 중년의 문턱을 넘어서면 문득 깨닫게 된다.
아무리 달려도 끝은 없고, 성취의 기쁨은 잠깐이다.
무언가를 이뤘다는 감정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자기 이해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나의 기질, 성향, 과거의 상처, 반복되는 감정 패턴, 내가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는 것들.
이러한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는 용기가 자기 이해의 시작이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정작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는 인색하다.
나를 비롯해서 주위에 있는 지인들을 봐도 대부분 자신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 관한 얘기만 한다. 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속으로 '너도 그런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에게도 분명히 그런 면이 있다.
그런데 자신이 그러하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상대방만 비방하거나 칭찬을 하고 있다.
나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해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래서는 안 돼", "왜 아직도 이 모양이야", "내가 왜 이럴까"라는 자책과 비난은 자기 이해를 자기부정으로 전락시킨다.
자기 수용이란 완벽하지 않은 나도 괜찮다고 인정하는 일이며,
이런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특히 중년 이후에는 과거의 선택과 실수, 누적된 후회와 상처가 자아를 억누를 수 있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연민이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된 선택, 실수 등으로 후회와 상처가 많다.
하지만 평소에는 그러한 선택과 실수한 나 자신을 비판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았기에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다독여준다.
자기 연민은 약함이나 변명과 다르다.
나의 아픔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다정하게 대하는 태도이다.
자기 이해와 자아수용이 깊어질수록 삶은 가벼워진다.
더 이상 비교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무엇을 이루었느냐보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해진다.
지금의 나는 이루어놓은 것이 거의 없다.
항상 과정 중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장본인인 나는 그 사람들이 어떤 눈으로 바라보든 전혀 관심이 없다.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아도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이웃님들, 이제 중년이 되셨다면
자신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이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한다면
주위의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거나 수용해 주지 않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보이고 변화할 수 있습니다.
CANI!
지속적이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