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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광장 Jan 03. 2024

새로운 길은 두렵다

비온 뒤 산길은 신선했다. 덥지 않으니 주위에 있는 나무, 꽃, 새,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등이 보이고 들렸다. 그동안은 이 모든 것을 더위가 삼켜버렸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샛길도 보인다. 다음에는 한 번 가봐야겠다. 오늘 발길을 돌려 가볼 수도 있다. 오늘 내가 꼭 가야 할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선뜻 그 길로 접어들기가 쉽지 않다. 어떤 길일까 호기심은 있는데 걸어 들어가는 것이 머뭇거려진다. 왜일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내가 갔던 길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다. 큰길이다. 그런데 샛길은 좁은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길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가고 있기는 하다. 우리는 익숙한 길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금까지 익숙한 길에서 열심히 살았지만 별로 좋은 결과도 없었다. 그래도 그 길을 그냥 가고 싶어 한다.     

왜일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가도 되니까.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아도 되고, 위험성이 없으니까 그냥 간다. 공부하지 않아도 되니까. 새로운 길을 못 가는 이유와 핑계도 항상 존재한다. 오늘 내가 샛길로 접어들지 못한 이유도 있다. 요즘 드라마 '악귀'를 가끔 본다. 뉴스에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묻지 마 폭행을 하는 남성들이 많다는 뉴스도 계속 들려온다. 

     

사람들이 별로 없는 샛길에서 악귀를 만날 수도 있다. 샛길에서 어느 남성에게 묻지 마 폭행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망상이 나를 주저하게 한다. 오늘은 이러한 이유로 샛길로 들어가지 못했다. 다음에도 또 다른 이유와 핑곗거리가 생길 것이다. 다른 길을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이유와 핑계보다는 새로운 길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더 크다. 다음에는 핑곗거리를 버리고 도전해 봐야겠다.  

   

정상에 올라 운동화를 벗고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본다. 수많은 빌딩들은 눈에 들어오는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저 빌딩을 손에 넣기 위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저 보금자리 안에서 주말을 즐기고 있을까?      

아니면 주말을 이용해서 어렵게 장만한 보금자리를 잠시 비우고 여행이라도 떠났을까? 사람이 없는 텅 빈 빌딩이라고 생각하니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렵게 장만하고 싶어 하는 빌딩도 사람이 있을 때만이 아름답다. 아무리 아름다운 빌딩도 그 안에 사람이 없을 때, 주인이 없을 때는 그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무리 멋진 빌딩이라고 해도 사람이 없을 때는 그냥 콘크리트 더미에 불과하다. 그 콘크리트 더미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의 우주다.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서 한 사람은 그 사람 나름의 우주를 형성하고 있다. 오늘은 왠지 우뚝 솟은 빌딩이 초라해 보이고, 그 안에 있을 사람들이 궁금해진다. 그 안에서 숨 쉬고 있을 모든 사람들이 평온한 주말을 보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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