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싶다
아침에 쿠팡에서 배달 온 30구 계란을 옮기려 박스를 열었다.
무더운 날씨에 얼음팩이 녹으며 계란판이 젖어 있었고,
그 바람에 계란판이 찢어졌나 보다.
박스에서 계란판을 들어 올리는 순간—
계란이 와르르 바닥에 깨졌다.
동글동글한 노른자,
탱탱하고 신선해 보이는 그 노란 빛깔과 반짝이는 투명함,
너무 예쁘고 아까웠다.
요즘 달걀값이 얼만데.
일부러 유기농으로 산 건데.
아이들에게 좋은 것 먹이고 싶어서였는데.
나는 깨진 것 중 비교적 깨끗한 것만 골라
따로 담았다.
버리기엔 너무 아까우니까.
그때, 아들이 툭 던지듯 물었다.
“이거 뭐 하려고?”
그 말에서 '나는 주지 마'라는 뜻을 읽었다.
'깨졌잖아. 난 그런 거 싫어.'
'나한테 그런 거 먹이지 마.'
그 말이 꼭 그렇게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깨진 건 계란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바쁜 아침이었다.
아이들 아침 챙기고,
준비물 챙기라고 재촉하고,
둘째 아이 영어 단어 시험 준비도 봐주며,
나는 커피 한 모금, 빵 조각으로 허겁지겁 아침을 때우고 있었다.
집은 어질러져 있었다.
바닥에는
과자봉지, 사용한 휴지,
빨대를 싼 비닐 조각,
만들기 하고 남은 종이 조각,
굴러다니는 연필과 색연필,
책상 위엔
온갖 스티커와 색연필, 가위, 자,
어제 먹고 남긴 요구르트가 담긴 컵,
그 위에 덮인 단어 시험 예제 종이...
큰아이는 방에서 밥을 먹으며 책을 읽고 있었고,
가방도, 물병도, 준비물도 아직 챙기지 않았다.
작은아이는 방 안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친구에게 줄 거라며.
그 와중에도 나는 영어 단어 뜻을 외치며
답을 말하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렇게 계란이 깨졌다.
그러니까,,, 그 순간 깨진 건
계란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다.
나는 오늘,
너무 서러웠다.
누가 상처를 준 것도 아닌데,
정확히 뭐라 말할 수도 없는데,
그냥 너무 서러웠다.
멍하니 출근했다.
지하철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기대하며
매일 아침 저 길로 들어가는 걸까.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무엇을 기대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도 늘 똑같은 하루.
그중에서도 오늘은,
정말 내가 무너지는 기분이 드는 하루.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은 조용한 공간.
그곳에 나 혼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곳도,
나 말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곳 같다.
모든 것이 나의 손에 달려 있는 삶.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것만 같은 삶.
맞다.
모두 내 책임이 맞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까.
어떤 날은 괜찮다가도,
작은 일 하나에 와장창 무너진다.
나는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더욱
매일매일 큰 실수 없이
비슷하게, 꾸준하게 살아내고 있다.
집도, 일도, 아이들도,,,
나는 내 책임을 피하지 않았고,
그 아래에서 나름 잘 버텨왔다.
그런데도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모든 게 실패처럼 느껴진다.
그건 일이 잘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날의 내 마음이 어떤가의 문제다.
나는 매일 비슷하게 살아가지만,
내 감정은 늘 같지 않다.
그래서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은 서럽고,
어떤 날은 도망치고 싶어진다.
살다 보면 또 잊겠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고생했어. 그동안.
그리고
나는 네가 조금 더 가벼워지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