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늦둥이였다. 어렸을 때 '부모님 나이가 어떻게 되시니?'하고 물었던 어른들은 내 대답을 듣고서 '빨리 커서 효도해야겠다.'고 덧붙이셨다. 그 말대로 나는 빨리 자라고 싶었다. 빨리 자라고 싶은 아이는 의젓하게 행동하는 것을 잘했다. 모든 어린 날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이처럼 보이려는 날보다 어른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날이 더 많았을 테다. 그 아이는 지금 어른으로 자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더더욱 아이들만의 놀라운 모습을 발견하기 쉬운지도 모르겠다.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볼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은 자꾸 찾아낸다. 이를테면 장난감 하나 없는 곳에서 놀이를 만들어내는 법, 진화론을 알아버린 나는 상상할 수 없는 태초의 이야기들, 직업이나 출신 대학을 묻지 않고 친구를 사귀는 법, 대차게 나를 혼낸 선생님을 다시 사랑하는 법.
아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마음들도 있다.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의 경이, 불볕의 더위와 상관없이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열정,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선생님에 대한 사랑, 먼저 사과를 건넬 수 있는 용기.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런 마음을 오래오래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살아가며 파도가 덮칠 때도, 갈림길에서 길을 헤맬 때도 가끔 그러했던 마음들을 떠올려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을 함께 누렸던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받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런 마음을 가진 너희들을 사랑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기를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제목을 딴 글을 쓰려고 너희들을 사랑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한명 한명의 이름을 떠올리며 어떤 것을 잘하는지, 어떨 때 예쁜지 기억을 더듬어본다. 이 이유를 쓰려니까 저 이유가 아쉽다. 잘하는 것들이, 예쁜 모습이 한두개가 아니라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이 된다. 이 친구 말고 저 친구도 이걸 잘하는데, 괜히 서운해하지 않을까도 걱정이 된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의 이유로 귀결한다.
그저 나의 학생들로 만난 너희들이라. 그것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유일한 이유다. 온전히 아이가 된 열두살의 선생님은 지금 오학년의 어느 한 교실에서 너희와 함께 자라고 있다.
2023년, 5학년 아이들과 책을 출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