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8월 - 갖고 싶은 것이 생기지 않았으면

여전히 함께하는 것들

by 한자연


16년 여름은 여러 가지로 삶의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는 집이 생겼고 그로 인해 나의 삶의 방식들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잠시 만난 첫사랑은, 대개들 그렇듯이 꽤나 오랫동안 내게 잔향을 남겼다. 점점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에 인색한 세상이 오는 것만 같다. 그것이 참 소중한 말인데도. 한철뿐인 인연에도 나는 참 많은 걸 보였고 비웠다. 몇 차례를 반복하고 나서야 이제는 안다. 그것이 때로는 상대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일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여전히 모른다. 연하게 찍힌 하트는 어떻게 칠해야 좋을지.



오랫동안 기타를 갖고 싶었다. 예전에 쓰던 기타는 저렴한 가격 하나만 보고 가져온지라 감히 나의 취향을 구매 기준에 올릴 수 조차 없었다. 장학금을 타게 되면서 조금씩 모아둔 돈을 그렇게 한 번에 탕진하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내가 원하는 기타는 원래라면 탐할 수도 없는 고가의 기타였지만 마침 세일을 한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그놈의 세일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참 야비하게 만든다. 애초에 제 분수에 맞지 않은 물건을 마치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이 된 듯이 자기 합리화를 거쳐 결국 구매를 하게 만든달까. 어찌 됐건 나는 기타를 구매하고 말았고 난생처음 65만 원이라는 거금을 쓰게 됐다. 그것이 당시 어린 나에게는 굉장히 역사적인 순간으로 다가왔고 제일 아끼는 금색 잉크를 잔뜩 칠했다. 가격만을 남긴 체. 그때는 저 숫자가 산더미처럼 크게 느껴졌었다. 그러나 9년이 지난 지금 감열지에 인쇄된 그 거금은 흐릿해져 이제 잘 보이지도 않게 됐다. 시간은 늘 어쩔 도리가 없다.


과연 인스턴트는 불량 식품으로 불려야 하는 것인가. 궁한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한 끼 해결사가 없다. 흔히 돈을 함부로 쓰는 사람에게 그 돈이면 국밥이 몇 그릇이냐의 그 국밥조차도 이제 만원이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친구들과 나는 맥도널드와 서브웨이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짭짤한 베이컨과 렌치소스가 들어간 빵이 어떻게 맛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눅눅한 빵과 시들한 양상추, 소금 범벅인 감자튀김도 소스만 있으면 그럭저럭 맛이 훌륭했다. 그마저도 아끼려고 이천 원 남짓한 샌드위치를 사 먹는 날이 오히려 더 많았으니까. 맛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배가 차면 그만인 식사. 그렇게 몇 년을 살아선지 지금도 그다지 음식 맛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물론 입은 까다로운 편이나 혀의 아량이 넓은 것인지 잘만 넘겨 배를 불린다.


육지거북 한 마리를 오랫동안 키워왔는데 이사를 거듭하며 집안의 많은 물건들을 버리면서도 이 친구 하나만큼은 보낼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된 직후, 다 쓰러져가는 재개발 구역에 들어가 살 때에도 거북이를 위한 집은 크게도 만들어서 키웠다. 믿지 못하는 이에게 오랜 친구를 보내는 일이란 그다지 달갑지가 않았다. 그러다 홍대의 한 카페에서 같은 종류의 육지거북을 발견했다. 나는 외로운 이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내어 사장님께 카페에서 함께 키워주실 수 있겠냐고 조심스레 여쭈었다. 사장님은 흔쾌히 승낙을 내보이셨고 카페가 문을 닫을 즈음 그 둘은 함께 농장으로 떠났다. 요즘 들어 숏츠나 짧은 밈에 동물을 사람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들이 자주 보인다. 과학이 어디까지 발전할지는 나로서는 짐작조차 안 가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과학의 발달도 그들의 의도를 추측할 뿐 정확히 대화를 가능케 할 기술을 만들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말이 없다. 무언의 대화라는 것은 점점 소란스러워지는 이 지구에서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언젠가 엄마에게 쓴 편지로 오늘은 이만 줄이려 한다.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 어느 날부턴가 멀어졌고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고 있어. 참 다행인 일이야.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태 나는 철부지로 남았을지도 모르니까.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꽤 잘 해내고 있어.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항상 붐비고 있고. 아들 걱정은 이제 접어두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일전에 보낸 편지에도 썼지만 이제라도 엄마의 이름 세 글자가 먼저가 되는 삶을 찾아줘. 아들은 요즘 그게 소원이고 소망이야. 돈 없다고 미안해하지도 말고 못해줬다고 미안해하지도 말아. 그 모든 것들이 엄마 아들을 단단하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나는 내게 주어진 상황에 항상 감사하고 있어. 나는 누울 집도 있고 나를 항상 맞아주는 엄마, 아빠, 조금 심술쟁이가 돼버린 시원이도 있어. 그 이상으로 가족에게 바란다면 과욕이지 않을까 싶어. 말이 길어졌네 쓰다 보니. 아무튼 엄마 생일 축하하고 그림 그릴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엄마.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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