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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등어 Oct 25. 2020

게임을 어떻게 안 할 수 있지

어렸을 때 했던 게임을 오랜만에 보면 강한 향수를 느낀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 8살까지 나는 부산에 살았다. 태어나기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극단적으로 건강한 형제들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자주 잔병이 있었으나, 또래 애들과 비교하면 그건 사소한 증상이었다. 나는 300원짜리 닭꼬치와 페인트 사탕을 먹으며 잡초처럼 열심히 자랐다.


90년대생 한국 아이들은 동네 친구들과 모여 모래를 만지거나 트램펄린을 타며 하늘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내가 가장 미쳐있었던 건 컴퓨터 게임이었다. 5살 터울의 쌍둥이 친오빠와 놀다 보니 어린 나이에 그리 된 것이었다. 나는 크레이지 아케이드에 미쳐있었다.


물폭탄을 부수면 건물이 무너지고, 마법처럼 아이템이 나오고, 나는 빨라지거나 강해 지거나 했다. 아빠에게 용돈을 받으면 나는 바로 피시방으로 달려갔다.


나는 승부욕도 엄청나게 강했다. 계속 게임이 지면 나는 울면서 키보드를 두드렸고 오빠들은 이런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았다.


Tux racer. 펭귄이 배로 썰매 타는 게임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피시방에서 놀고 있는데 작은 오빠가 날 찾으러 왔다. 컴퓨터에 크레이지 아케이드보다 더 재밌는 게 있으니 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큰 오빠가 펭귄이 배로 썰매를 타는 게임을 볼 수 있었다. 얼음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펭귄의 시야를 따라가다 보면 달리기에서 꼴등만 하는 나도 빠르게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언니 오빠들과 행복하게 펭귄 게임을 즐기면서,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덟 살에 그런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고 웃기지만 말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빠가 말했다. 제주도로 이사를 간다고. 바다가 가까운 곳이라고 했다. 나는 썰매타는 펭귄처럼 미끄러져가듯이 다른 삶으로 흘러들어 갔다. 제주는 피시방 따위는 없는 곳이었다. 나의 게임 중독은 자연스럽게 치료됐고 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했던 게임을 오랜만에 보면 강한 향수를 느낀다. Tux racer는 그런 게임이었다. 밤늦게 피시방에 있는 어린 여동생을 찾으러 온 오빠의 표정을 상상하게 만든다. 옛날 유행가가 한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처럼 어렴풋이 여러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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