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에서 다낭까지 기차 여행
베트남 여행 중에 기차를 탄 건 참 오랜만이다. 요즘은 버스 편이 소도시들까지 편리하게 연결돼 있어 기차로 이동한다는 생각 자체를 아예 안 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에서 다낭은 역시 기차라야 한다. 버스보다 시간은 배가 들지만 하이번(Hải Vân) 고갯길의 아름다운 풍광은 기차를 타야만 만날 수 있으니까.(예전에는 버스들도 하이번 고갯길을 넘었지만 터널이 뚫린 후로는 거의 터널로 다닌다.)
후에에서 다낭까지는 기차로 4시간. 아주 긴 시간은 아니라 일반 기차를 예약했는데 막상 타고 보니 관광열차였다. 특별 열차 편까지 생긴 걸 보니 하이번 고갯길 더 유명해졌나 보다. 하긴, 달리는 내내 차창 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멋진 바닷길 풍광을 누가 마다할까. 관광열차가 생긴 건 당연한 수순이다.
기차에 오른다. 후에에 머무는 며칠 동안 날씨가 궂어 차창밖 바다 풍경도 흐릿하려나 걱정되기도 했지만 흐린 날은 또 그런 날만의 아름다움이 있지 않겠냐고, ‘하이번’이 바다와 구름이라는 뜻이니 어쩌면 구름낀 하늘이 고갯길과 더 어울릴 지도 모른다고 나를 달래며 예약한 자리를 찾았다. 바다를 보며 갈 수 있는 왼쪽 좌석을 예약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반대편 자리다. 나는 이걸 어쩌지, 하며 안타까워하고 있고, 베트남 사람들은 바다 쪽 자리인데도 앉자마자 커튼을 쳐버리고 잠을 청한다. 좋은 자리에서 풍경을 보겠노라 뭔가 수선스러운 우리와 심드렁한 그들의 대비가 재밌어 웃음이 났다. 다행히 친절한 역무원이 바다 쪽으로 자리를 바꿔주었다. 그런데 마음이 참 요상타. 왜 자꾸 오른쪽의 산과 언덕이 멋져 보이는지 이쪽으로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느라 나는 더 분주해졌다. 기차는 조금씩 조금씩 하이번 고개를 향해 달렸다. 굽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는 길, 기차의 머리와 꼬리가 자주 보였다.
간이역에서 잠시 사람들을 내려주고 태우고 달리던 기차가 랑꼬 역에서 멈췄다. 랑꼬 역에서는 15분을 정차한다고 해 우리도 잠시 내렸다. 마침 남쪽에서 올라오는 기차와 우리가 탄 기차가 플랫폼을 가운데 두고 만났다. 승무원들끼리는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여행객들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정차 시간에 맞춰 나온 상인들까지 더해져 좁은 플랫폼이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플랫폼 앞쪽에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와 있다. 반바오, 반바오를 외치는 확성기 소리가 거기에서 난다. 재미있는 건 오토바이 위에 아예 부엌을 차렸다는 것이다. 작은 찜솥에 반바오를 찌고 있다. 그것도 무려 장작을 때서. 출출한 참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평소에는 잘 안 먹는 반바오를 하나 달라고 했다.
찜통을 열자 장작불이 만든 뜨끈뜨끈한 김이 확 피어오른다. 장작불에 그을린 까만 솥 안에 들어 있어서 그런지 원래도 하얀 반바오가 유난히 희다. 반바오 상인은 잘 쪄진 걸로 골라서 꺼내준다. 뜨끈뜨끈, 아, 반바오가 이렇게나 맛있는 거였던가. 겉의 빵은 폭신폭신 잘 부풀었고 소와의 비율이 잘 맞아서 어떻게 베어 물어도 야채와 고기와 당면이 섞인 소가 적당히 입안에 들어온다. 그동안 먹었던 대부분의 반바오는 소는 조금 들고 겉의 빵이 훨씬 많았는데 말이다. 반 정도 먹었을 때는 메추리알이 등장했고, 다 먹고 나니 입안에 후추 향이 은은하게 남는다. 나는 왜 반바오 상인의 실력을 의심하고 딱 하나만 샀을까. 곧 출발하려는 기차 안에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언젠가 또 이 기차를 탄다면 이번에는 이 반바오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반바오는 맛있었다. (그러니 랑꼬역에 기차가 정차하면 꼭 내리셔야 합니다. 오토바이 위에서 장작불을 때 반바오를 쪄서 파는 최고의 반바오 달인이 랑꼬역 플랫폼에 옵니다.)
기차가 랑꼬 역을 떠난다. 플랫폼에서의 짧은 시간이 여행의 축소판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다른 방향에서 달려온 사람들이 잠시 만나 한바탕 웃고 맛있는 것을 나누고 각자의 예정된 시간이 와서 헤어져야만 하는 우리의 여행. 어쩌면 삶의 모습이기도 하려나. 이런저런 단상들이 창밖 풍경과 함께 덜컹덜컹 흘러간다.
그런데 어디선가 베트남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단체관광팀이 있는 건가.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구경을 나섰다. 가까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지는 노랫소리는 문을 염과 동시에 마치 수문이 한꺼번에 열린 것처럼 엄청난 볼륨으로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매점이 있는 열차칸이었다. 아오자이를 입은 남녀가 번갈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승객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거 같은데 손님은 없고 직원들만 신이 나서 구경한다. 정말 열창을 한다. 가수 지망생들인 듯 아마추어의 풋풋함이 느껴지지만 어깨를 마음을 들썩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는 아예 창을 마주하도록 만들어 놓은 긴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귀가 쩡쩡 울릴 정도로 소리가 큰데도 싫지 않았다. 후에-다낭 관광열차의 OST 같았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서’로 시작하는 주제가가 나오면 멋지게 우주를 향해 날아가던 <은하철도 999>처럼 후에-다낭 기차가 노래하며 달려간다. 때로는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바다와 산과 논과 마을을 지나고 하이번 고개를 넘어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내려간다. 다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올 때야 나는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왔다.
다낭 역에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선 플랫폼에는 어느새 저녁이 내리고 있다. 아까 식당칸에서 노래 부르던 두 청년이 내 앞으로 걸어간다. 어느새 아오자이를 벗고 그 나이 또래의 청년들이 좋아하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낭이 집인 걸까. 아니면 잠시 쉬었다가 후에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조금 지쳐 보이는 뒷모습을 보니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조카가 문득 떠오른다. 나의 조카도, 그들도 꼭 그 꿈을 이루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나는 다낭 역 밖으로 나왔다. 기찻길의 곡선이 마음에 남아 그럴까. 세상이 새삼 둥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