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빠지던 시기가 있었다. 심각했다. 어느 해 환절기 즈음부터였다. 그때만 지나면 멈추겠지 했는데 갈수록 더 많이 빠졌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말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던 때였다. 안정적인 직장을 호기롭게 그만두고 2년 베트남으로 자원봉사를 다녀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돌아오니 일을 찾기 쉽지 않았다. 떠나기 전에 했던 일이 아닌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겠다고 스스로 선언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거절의 답장이 반복되니 우울했다. 동생이 좀 아팠고 부모님은 결혼하지 않고 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머리카락이 빠진 건지 어느 날은 하도 빠져서 거울 주변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세어본 적도 있었다. 처량한 기분의 날들, 걱정의 날들이 이어지니 잠자리에 들어도 몇 시간 뒤에야 겨우 잠드는 날이 늘어갔다.
그런 어느 날, 친구가 인형 하나를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놔도 손마디 하나 다 못 가리는 아주 작은 인형. ‘걱정인형’이라고 했다. 성냥개비를 반 잘라 털실로 대강 말아놓은 듯한 인형을 들여다보니 검은 머리가 풍성했다. 걱정이고 뭐고 머리 풍성한 모습이 우선 얄미워 친구에게 ‘얘가 나 약 올리는 거 같은데’,라며 농담을 던졌다. 친구와 나는 잠깐 웃었다.
”머리 빠지는 걱정이라도 얘한테 맡겨봐. “
그 밤 나는 친구가 일러준 대로 인형을 베개 밑에 넣었다. 하도 작아서 베개 밑에 두었는데도 있는지 없는지 아무런 느낌이 없던 인형이 내 걱정을 바로 다 가져가 바로 잠들었다면 무슨 걱정일까. 당연히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잠이 안 와 괴로울 때면 베개 밑에 손을 넣어 인형을 잠시 쥐었다가 놓았다. 나는 그 작은 아이에게 마음을 기댔다. 온갖 걱정들로 흙탕물처럼 뿌옇고 흐린 마음이 천천히 천천히 가라앉는 듯했다.
더벅머리 걱정인형과 꽤 오랜 밤을 함께 보냈다. 머리 빠지는 게 단번에 멈췄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일을 바로 찾은 건 아니지만 나는 매일 밤 걱정을 잠시 미뤄두고 잠을 청했다. 그 시기를 어찌어찌 지나올 수 있었다.
그 인형은 지금은 없다. 어느 틈엔가 사라졌다. 그때의 내 걱정을 인형이 가지고 가버린 것일까. 너무 조그매서 잃어버리기 쉬운 걱정인형.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다. ‘걱정이 너무 커 보여도 걱정 마, 사실 별 거 아닐지도 몰라. 네 걱정의 크기는 나만한지도 몰라, 하고 위로해 주려는 건 아닐까. 이렇게 작으니 곧 사라질 거야, 하고...
그로부터 십 년의 세월이 훨씬 더 지났다. 나는 머리숱 적으면 어때, 하며 살고 있다. 직업은 바꾸지 못했지만 먹고살았다. 그때의 걱정은 또 다른 걱정들로 바뀌었다. 부모님은 자꾸 편찮으시고 프리랜서로 이런저런 글을 쓰며 살아왔지만 작년부터는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일은 반 이상으로 줄었고 이제 AI와도 경쟁해야 한다. 걱정과 같이 흘러가는 것이 인생일까.
머리숱 많았던 옛날 인형 대신 요즘은 쇼트커트의 아이가 베개 아래에 있다. 자꾸 등장하는 새로운 걱정은 잠시 걱정인형에게 맡기고 잠을 청한다. 내일 아침 일어나서 다시 걱정하자고, 그리고 그 걱정을 조금씩 해결하자고 나를 다독인다.
당신에게는 오늘 어떤 걱정이 있을까?
당신의 머리맡에 걱정인형을 놓아둔다.
걱정은 잠시 걱정인형에게 맡겨두고
우선 우리 오늘 밤은 잠을 청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