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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난언니 Oct 31. 2019

내 인생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

별거, 이혼, 그리고...


  2007년 3월 15일 우린 수백 명이 보는 자리에서 사랑을 약속했다. 그리고 2017년 9월 단 한 사람을 증인으로 두고 약속을 취소했다.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라 믿음으로 시작한 나는 사소한 일에 사랑도 그렇다고 실망도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무디게 각자의 일에 충실했다.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로 사소한 일로 다툼을 해대기도 했다.

 마트에서 이것저것 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담는 남편과 조금이라도 아끼려는 아내 사이의 실랑이 아이 육아에 지쳐 남편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데 술 마시고 들어온다는 전화 한 통에 서운한 아내의 하소연.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애써 집안 청소했는데 칭찬은커녕 빈틈을 지적해대는 잔소리에 섭섭한 남편의 도발 정도의 작은 실랑이 정도였다.      

 

 그래서인가? 처음으로 이혼이란 말도 참 무디게 내뱉었다.        


 늘 생각이 자유롭고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었던 나에게 결혼생활이란 행복한 족쇄였던 듯하다. 어쩌면 행복을 충분히 누린 후 슬슬 족쇄를 풀고 싶어 질 때 즈음 그 일이 난 것일 수도 있다. 이혼만은 막고자 하는 남편을 무시하고 ‘신뢰’를 운운하며 벗어나려 했다. 실랑이는 별거라는 오랜 기간 침묵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이 나왔을 때 나는 족쇄의 마지막 줄을 끊고자 또다시 애쓰고 있었다. 전 남편에 대한 큰 미움도 원망도 없었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이 관계를 다시 연결할 자신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학교 가는 길에 정류점에 선 버스를 타고 해운대를 간 적이 있다. 모범생이었던 나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도발적인 일탈에 가슴이 떨리고 무섭기까지 했다. 집안이 발칵 뒤집어지고 엄마에게 강하게 등짝을 몇 대 맞긴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 할 땐 불안한 도발이었지만 두 번, 세 번째는 당당하게 일탈을 선언하고 학교를 잠시 빼먹었다. 오히려 자칫 공부만 하고 아무 추억도 쌓지 못할 뻔했던 내 고교시절은 생각만 해도 즐겁고 유쾌한 그런 시절이 되었다.

 

  이혼도 그랬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때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로 정의되다가 한 번 내 인생의 범주에 넣고 나자 내 생각과 행동은 과감해졌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그가 제안한 별거는 오히려 내게 홀가분한 자유의 맛을 알게 했다.

 그때 알았다. 온전한 사과를 손으로 반쪽 자르기는 어려워도 골이 패인 사과는 단번에 잘린다는 것을.



 별거기간 동안 한 번도 누구의 잘잘못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에 대한 배신감과 미움을 느낄 새도 없이 영악하게도 혼자의 삶을 꾸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저 내가 ‘나’인 것이 좋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결혼이 나에게 맞지 않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갔다. 약속한 별거 기간이 다가올수록 내 이기적인 생각은 행동을 재촉했다. 오히려 머리 아픈 이혼 과정을 서로 상처 받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할 방법을 찾느라 분주했다.

 카페를 들여다봐도 그렇고 소개받은 이혼 전문 변호사가 하는 말도 매 한 가지였다.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손해 보지 않고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싸우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돈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푼 안 되는 위자료와 재산을 받기 위해 내 영혼을 갉아먹는 싸움을 피했다. 내 치부를 다 드러내고 혹은 상대에 대해 실오라기 같이 남아있을 연민마저 아작을 내가며 재산싸움을 하기보다 아름답기만 할 것 같은 내 인생을 가꾸는 것에 치중하고 싶었다.        

  

두 번째 법원에서 본 남편은 마지막 희망처럼 가지고 있던 애틋한 눈빛마저 사라졌다. 새 삶을 살 준비가 되었고, 나 없이도 아이와 충분히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더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보여주었다. 내가 빠져나간 자리에 아무 빈틈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뒤늦게 아쉬웠지만, 마음은 충분히 놓였다. 법원을 먼저 나서 차를 오른쪽으로 돌리자 법원 앞 길가에 그가 서 있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신나서 깔깔거리는 모습이었다. 누군지 알 것 같은 전화 속 상대 덕분에 나도 맘 편히 웃고 있었다.



 행복하면 되었다. 그도 아이도 그리고 나도, 내 선택에 일말의 후회도 없도록 더욱 열심히 나다운 삶을 찾아가고 있고, 잠깐 힘들어하며 엄마를 거부했던 아이는 내 사랑을 알아가면서 더 밝고 단단하게 여물어 가고 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일 뿐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일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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