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이혼 후, 미래에 대한 걱정과 주변 정리 등으로 몇 달을 혼자 보냈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이혼이라는 상황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혼자 살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훌훌 털고 정리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그래서인가 사람들에게 애써 유쾌한 표정으로 행복을 보여주려 애썼다.
“난 혼자가 된 대신에 진짜 내 삶을 찾았어요. 내려놓고 나니 편하고 행복해!”라고
문제는 처음 해 본 이혼.
행복하다 말하고 즐겁게 살면 상대도 그렇게 받아들이는 줄 알았지만 아직까지 이혼이라는 건 우리사회에서 그리 익숙한 단어는 아니었다.
이년 전 이맘때 즈음 처음 간 한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런 모임을 갈 때 한 가지 곤혹스러운 것은 바로 ‘자기소개’ 다. 1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나를 소개하는 것이 꽤나 힘들다. 특히 한동안 사람을 안 만났던 터라 더 낯설고 나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안녕하세요. 저는 000이고요 사업을 좀 배우려고 여기 왔습니다. 나이는 마흔둘. 돌싱입니다.”
'돌싱'
그 말을 왜 했을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적이 흘렀다.
모두 눈만 말똥말똥 뜬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헤매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약 3초간의 정적은 나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이 낯선 상황에서 안타까움을 표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에 대한 당황스러움일 것이다. 어쩌면 몇몇은 짧은 순간 내 이혼 사유를 추리하느라 혼돈스러웠을 수도 있다.
진행자의 재치 있는 애드리브로 자연스레 다음 사람의 소개로 넘어가고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잊은 분위기지만 한 두 명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듯했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고 나의 민망함도 사라질 때 즈음 반대편에 앉은 예쁘장한 여자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저기, 사실 저도 돌싱이에요.”
반가움에 쳐다본 그녀와 서로 공감한다는 짧은 눈 마주침이 오가고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까 소개할 때 좀 놀라기도 했지만, 반갑고 순간 위로받는 기분이었어요. 전 제 상황을 말하면 사람들이 저를 다르게 볼 것 같아 숨기고 다녔어요. 그런데 아까 보니 사람들은 전혀 달리 보지 않더라고요. 멋있었어요 ”
‘내가 느꼈던 정적의 3초가 그녀의 눈에는 더 환영받는 소개였다니…’
그녀의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사람들을 세 부류로 구분했었다.
결혼한 자와 결혼하지 않은 자. 그리고 돌아온 자.
애써 보통의 존재와 따로 분류를 해 가면서까지 내 자격지심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씌우지 않은 이혼녀라는 프레임에 나 자신을 가두고 아무도 보지 않는 틀 안에서 애써 웃고 더 잘 사는 척 더 행복한 척 애쓰고 있었다.
그냥 가만있으면 될 것을...
세상에는 그냥 두 부류만 존재한다.
결혼한 자와 싱글인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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