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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난언니 Nov 12. 2019

자식 때문에 이혼 안 할 뻔했다

아이요? 믿음 주는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정은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 그리고 멀리 보면 돈 많은 아빠가 키우는 게 낫지 너랑 지지리 궁상맞게 자라는 게 좋겠니? 제부랑 정은이가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천 번을 생각해도 원망스럽기만 한 친언니이다. 힘들어도 내가 키웠어야 했다는 후회와 죄책감은 한동안의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표출되었다.


 가끔 부모 앞에서 투정도 부리고 재롱도 피우면서 밀당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김없이 내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심연으로부터 올라온다.

 

 내 아이도 혹시나 어딘가에서 이런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위축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스러움에 얼른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엄마 나 친구들이랑 놀고 있으니까 좀 있다 전화해.”

“야! 너 아직 집 안 들어갔어? 여태 놀고 있으면 어떡해? 곧 어두워지니까 얼른 집 들어가 알았지?”

"어! 야~~~ 이리로 돌아 이리로."

짧은 대답으로 마무리하고 급하게 친구들을 부른다. 옆에서 깔깔대는 친구들 소리도 들린다. 뭣이 급한지 전화기를 채 끊기도 전에 친구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그려진다.


 아이의 경쾌한 목소리에 어느새 눈물은 쏙 들어가고 나는 여느 엄마처럼 잔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늘 의기소침 해 있을 거란 건 쓸데없는 내 염려였다. 아이의 유쾌함과 엉뚱함은 여전하다.      


다행이다.      




 수천 번을 망설이고 번복하며 결정을 할 수 없었던 건 아이 때문이었다. 내 잘못된 판단으로 내 아이의 인생까지 망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쉽게 결정을 못 내렸었다.   

   

믿음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아이는 충분히 건강하다.


 몸은 따로 지만 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늘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려 했다. 아이가 어떤 말을 해도 끝까지 듣고 대답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 귀도가 아이를 위해 끔찍한 수용소 생활을 게임으로 연출한 것처럼 나도 늘 웃으며 코믹 연기를 보여주었다. 필요하면 따끔하게 야단을 칠지언정 감정 싣거나 짜증 내지 않았다. 사소한 나만의 사랑은 조금씩 아이의 마음을 열어갔다  

 

 내 사랑을 인정한 건지 아이는 예전보다 훨씬 편하게 다가왔다. 형편없는 수학 점수를 친구에게 상담하듯 고백하는가 하면 늦잠 자서 학교 지각한 일까지 다 말했다가 된통 야단맞은 적도 있다.      


 아이는 생각보다 빨리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적응해 가는 중이다.      


 어느 날, 눈뜨자마자 습관적으로 손에 든 핸드폰에는 100여 개가 넘는 메시지가 있었다. 가끔 밤새 단톡 방에서 대화가 길어져서 수백 개의 메시지가 남겨져 있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 무심하게 카카오톡 창을 열었다가 기겁을 하고 일어났다.

 100여 개의 메시지는 아이로부터 온 것이었다. 순간 손발이 떨리고 눈 앞이 노란 것이 아무것도 안 보였다. 직감적으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라 단정 짓고 혼자 안절부절 못 했다. 전화도 세 통 와 있었다.

 전 남편에게라도 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지만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다. 냉수 한잔으로 정신을 가다듬은 후 문자를 확인하고서야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긴 있었다. 다행히도 내가 생각한 끔찍한 일은 아니고 아빠와의 다툼으로 울분을 참지 못하고 나를 찾아댄 듯하다.


 정말 별 일 아닌 것으로 부부가 싸우듯 아이와 아빠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유로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말다툼이 끝나고도 화가 풀리지 않자 대답 없는 내 카톡 창에 대고 아빠 욕을 하며 화풀이를 해 댄 것이다.  

 메시지를 읽다 보니 아이 감정은 둘째치고 말이 참 논리적이다.

 내 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확한 상황 분석과 감정표현, 현실적인 방안 제시까지…  마치 옆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자세하고 명료한 글 솜씨에 감탄했다.

 

 그래도 한 번도 심하게 화를 낸 적이 없는 그저 밝은 아이여서 염려스러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다.

“응, 엄마 왜?”

“너 괜찮아?”

“뭐가?”

목소리는 아무렇지 않게 들려 괜한 감정 다시 북돋을까 봐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너 월래 글을 이렇게 잘 썼어? 완전히 몰입했잖아. 너 작가 해도 되겠다. 오늘부터 하나씩 글 써서 보내봐.”

“됐거든!”


  다행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목소리에 늦은 밤까지 문자로나마 울분을 토로하고 깊은 한 숨을 잔 것 같아 맘이 놓였다. 혼자 마음 깊이 담아두면 오히려 마음의 병이 생길 수 있는데 딸은 적어도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을 해 대서 건강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고민이든 감정이든 다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나라는 것이 참 감사하다.   

 



 아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다듬어져 가고 있었다. 엄마가 옆에서 하나하나 챙겨주는 아이들만큼 생활이 규칙적이고 정리되진 않지만, 자기만의 룰을 하나씩 만들어가며 생활하는 것 보면 또래에 비해 상당히 독립적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충분히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아이가 이  시기를 더 잘 견딜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본다  아이는 내 믿음을 안전장치 삼아 후에 올 더 큰 아픔도 무난하게 넘길 수 있는 극복 근력을 단단하게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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