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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Jun 24. 2020

가끔은 오지랖

2017년 6월 14일

가끔은 오지랖

지난 일요일 친구 부친상을 당하여 김천 조문을 다녀왔다. 검색해 보니 김천의료원이 김천역에서 10분 미만 거리라 그냥 기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대전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하는데 어떤 할머니가 불쑥 승차권을 다른 청년에게 내밀면서 뭐라고 설명을 하는데 그 청년이 못 알아먹었다. 대구-김천행 기차표를 여기 대전역에서 내미니 그 청년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울 수밖에 없지. 결국은 내가 오지랖 작동하여,

"할머니 김천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여기까지 오신거죠?"

 라고 물었더니, 암튼 김천 가야 한다는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이거 김천 가는 거 맞으니 일단 타시라,라고 하고는 같이 탔다. 순간 어, 자리도 없고 승차권 검사하면 또 뭐라 뭐라 꼬이겠다 싶더라. 그럼에도 일단 타시라,라고 오지랖 결정권을 썼다.

그 할머니는 나 따라서 3호차에 같이 타서는 불쑥 자리에 앉으니 당연히 주인이 와서 자기 자리라 한다. 그래서 이왕 부린 오지랖 다시 펼치기로 했다. 그 할머니를 모시고 옆칸 4호차 스낵 칸에 갔다. 거기도 자리가 예사롭지 않았다만 정식 자리는 아닌 바닥 모퉁이에 자리 하나가 간신히 있어서 거기에 앉게 하고는, 승무원이 와서 물으면 대구에서 기차 타고 오다가 깜박해서 김천에서 못 내려 대전까지 왔다, 승차표 이야기하면 다시 끊거나 승무원이 알아서 정리해 드릴 것이다, 라는 긴 설명을 불라 버릴라 하고는 다시 내 자리로 왔다.

자리에 앉아 생각하니, 졸다가 김천역 거쳐 대전까지 상행선 타고 왔는데 다시 대전역에서 내려가는 하행선 플랫폼은 어찌 아셨을까, 신기하네 하는 순간적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저 상황을 승무원이 기차표 보고 딱 이해하면 좋은데 아니면 불라 버릴라 설명이 힘들고, 원칙의 승무원이면 객내 발권 수수료니 뭐니 시끄럽겠다 싶어서, 내가 코레일 앱을 열었다. 무궁화 내려가는 경부선 다음이 옥천인지, 영동인지 알 수 없는데 옥천이든 영동이든 김천까지 자리 하나는 있겠다 싶어서 검색하니, 내가 누구인가 기차표 신공 아닌가. 자리가 없어서 서서 가는 사람들이 많아도 내가 검색하면 당연히 자리는 있어야지. 있다. 옥천에서 김천까지 자리가 있어서 일단 내가 발권했다. 4,600원을 거침없이 결재하고. 그 자리 번호를 손바닥에 쓰고는 다시 4호차 스낵 칸에 갔다.

바닥 모퉁이에 앉은 그 할머니는 연신 대구-김천 간 지나온 그 잠의 전설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도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내가 자리를 구했으니, 다음 정거장 옥천에 서면 자리를 안내해 드릴 테니, 거기에서 앉아가시고 이번에는 주무시지 말고, 김천에서 잘 내리셔라,라고 또 긴 설명을 했다. 그때 마침 승무원이 짠 하고 나타나길래 이거 자리 안내 좀 해 드리고, 김천에서 내리는 거 좀 확인하면 좋겠다 했다(나도 김천 내리지만, 이건 승무원이 신경 쓰면 나는 빠져도 되는 일이라고 강력하게 마음먹었다.ㅋㅋ).

그 부탁만 하고, 몸을 돌려 휙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잠들었다. 여기까지 내 오지랖을 작동했으니 나머지는 승무원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선을 그으니 맘도 편하고, 잠순이답게 잠에 쏙 빠졌다. 근데 그 잠을 승무원이 와서 깨운다. 일부러 찾아온 모양이다. 그 할머니가 자꾸 돈을 준다고 한다면서. 내가 손사례를 치면서 그거 얼마 안 하더만요. 됐으니 내리는 것이나 좀 봐주세요, 했다. 그 승무원도 알았다고 하면서 이거 정신이 온전한가 살짝 걱정된다고 하길래... 나의 오지랖은 또 발동했다. 어머나 그러면 핸드폰 저장된 아무 번호라도 눌러서 가족에게 알려야 하는 거 아닐까요(아이고 몬 살아. 내가 뭘 또 이런 주문까지 하냐... 허덕 허걱).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승무원은 나한테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뭐 그냥 그 할머니 불라 버릴라 설명하는 그 절차를 줄여 준 것뿐인데, 뭔가 더 엮이나 하는 내 조바심도 있었으나, 그냥 김천까지 내 자리를 뜨지 않기로 마음먹고 또 잤다.

김천역 도착하니 그 할머니가 내려서 나가고 있는 뒷모습이 보이더라. 저 정도 기력이면 굳이 아는 척 안 해도 되겠다, 라는 내 다짐을 하면서 나의 오지랖은 마감하기로 했다.

광장 나와 내 일상으로 돌아와 샬라 샬라 통화한다. 김천역 어디? 육교? 건너라고? 알았어. 끝. 이렇게 그 날은 지나갔다.

ㅡㅡㅡ
-뭐 코레일톡에서 뭔 쿠폰이 사용 마감이 온다는 문자가 와서 이래저래 눌러보다 이 승차권을 다시 보네. 그래, 그 날은 스마트티켓 맞았어. 오케이!!!!!




2017.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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