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간 넋두리하는 김에 하나 더.
나는 시인이나 소설가를 위대하게 생각하는 것은 원초적 '구토'를 너무 세련되게 한다는 것이지. 그거 할 줄 알아야 시인이 되고, 소설가가 되는 것이거든. 어릴 때 글쟁이 선배나 어른들이 그랬어. 너는 시, 는 못 쓴다. 소설도 못 쓴다. 나도 알고 있어.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는 현실에서 오롯하게 끄집어낼 수 있는 자기 자아가 탄탄해야 문학을 하는 것이거든. 그 경계 안에서 감정을 압축하면 시인이 되고, 묘사하여 풀어내면 소설가가 되는 것이지.
문단에서도 꽤 알만한 선배가 있는데, 그이도 어릴 때부터 나는 시인도, 소설가도 안 될 것이다 생각했어. 글은 잘 쓰고, 사유의 벽도 깊고 높아. 그런데 왜 시인도 소설가도 안 될 것이다 생각했냐 하면, 글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이 보이는 그 지점을 극도로 막고 있는데 어떻게 창작을 할 수 있겠어. 내 사랑의 한 축이 보이고, 내 일상의 한 축을 촉촉하게 보여줘야 하는 그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그거 못 넘는다고 생각했거든. 역시나 글쟁이로 평생을 살아가는 업을 하고 있지만, 시인이나 소설가는 안 했지. 문학이 그런 것이지.
시인이나 소설가의 위대함에 눌려서 어느 날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고 있으면 내 자의식이 다시 가위에 더 눌려져. 도대체 하고 싶은 것이 뭐냐. 영악하지도 못 하고, 부지런하지도 못 한, 내 안의 자아는 도대체 어디까지 와서 헤매고 서성이고 있냐고 물어. 그 질문에 대답을 못 해서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지만 도무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조금 더 영악해지면 좋겠어. 조금 더 부지런해지면 좋겠어. 조금 더 미쳤으면 좋겠어.
시인들의 글과, 소설가들이 묘사하는 그 디테일들의 글이 아프게 해. 창작의 아우라가 있거나 실용의 현실감이 있거나 뭐든 있으면 좋겠어. 그런데 죽어도 못 할 것 같아. 뛰어넘는 한계가 언제나
몇 센티는 바닥에 깔아 두는 것의 습관이 있거든. 그렇게 바닥에 깔아 둔 그것들이 부메랑 되어 돌아오는 것이거든. 차라리 영악할 수 있으면 좋겠어. 그게 요즘 소망이야. 치열하지 말고, 영악해지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있어. 내 안의 영악 성은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시인이 못 되어서, 소설가가 못 되어서, 그 능력이 안 되는 그 틈에는 결국 단순하지 않은 오만 떵덩어리를 끌어안고 산다는 것이지.
시인을, 소설가를 위대하게 생각하는 것 좋잖아. 그 대신 나는 제발 좀 단순해지자. 그게 내 숙제야.
가을까지 아플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