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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Jul 04. 2020

계란 묻혀 부쳐먹는 분홍 ○○○

그게 나한테는 땡땡이구나

내 몸은 너무 정직한 것 같다. 어제 옛날 분홍색 소시지에 계란 입혀서 부친 것, 몇 개 먹었다. 그것도 미리 끓는 물에 소시지 데쳐서 화학 불순물 거의 다 빼고 구웠는데, 그거 먹고 잔 오늘 아침 속이 불편하다. 어젯밤부터 속이 더부룩해서 왜 그런지 몰랐는데 아침 되니 그게 이유인 줄 알겠다. 심하지는 않지만 상쾌한 아침은 아니다. 근 10년, 아니 한 20년 만에 먹어 본 것 같은데 이렇게 정확히 반응이 오니.

동네 마트에서 대문짝만 하게 POP 걸어두고 유혹하더라고. '계란 묻혀 구워먹는 옛날 소시지'라고. 순간 끌리더라고. 옛날 어릴 때 저 반찬은 거의 신의 선물끕이었거든. 도시락 반찬으로 이런 걸 싸오는 것, 반에 몇 명 안 되었더랬다. 예나 지금이나 식탐이 많지 않아서 친구 중에 그 소시지 싸 와도 뭐 그리 먹어보겠다고 아우성을 안 치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탐스러운 그 도시락이 로망이기는 했었지. 많이 안 먹어 봤으니 그 맛이 머릿속에 남아있거나 뭐 그러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그제는 끌리더라고. 희한하지. 그래서 사 왔지. 어제저녁 반찬으로 먹었더니만. 끓는 물에 소시지 퐁당 데치는데 온갖 불순물이 다 쏟아졌는지 물이 뿌연더만. 그런 과정을 거치고 계란 묻혀 부쳤음에도 내 몸은 정확히 신호를 보낸다. 너 그거 앞으로 먹지 마라, 하고.

채소도 상추나 오이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데쳐 먹는다. 양배추도 물에 충분히 담가서 잔여 농약 독소를 빼지 않고 찌면 바로 몸에 신호 와서, 어느 순간 양배추 찌는 게 손이 많이 가는 식재료가 되었는데. 백만 년 만에 먹은 소시지 계란 부침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요주의 식재료로 다시 등극했다. 이러니 나는 음식에 절대 도전장을 못 내민다. 모험을 못 한다.

찌거나 데쳐서 양념 최대한 덜 하고 먹는 반찬이 최고로 맛이 있으니, 외식의 즐거움은 사실상 거의 없다. 생각해 보니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면 좋겠다, 뭐 이런 생각이 든 적이 거의 안 든다. 하물며 외국 나가도 마찬가지이다. 첫날 뭘 먹었는데 그게 입에 맞았다 하면 마지막 여행날까지 거의 그것만 먹었으니. 나랑 여행 가면 먹는 재미는 같이 공유하기 힘들다. 하니 여행도 이제는 혼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외국 여행지에서 기억나는 먹거리는 사실 커피만 제일 크게 기억된다. 오, 거기 커피 맛있더라, 하는. 외국 마지막 여행지였던 일본에서 가지 올린 파스타가 있었는데 면은 기억이 거의 안 나고, 딱 그 가지만 생각나니. 그 집 가지 맛은 참 일품이었다는 거.

한동안 서울 맛집을 좀 다닌 적이 있었는데 기적이었던 것은 그나마 내 취향을 너무 잘 아는 지인이 있어 가능했었다. 식재료나 식감, 화학조미료의 강약 등등을 너무 잘 챙기는 지인이라. 정말 정확하게 그 맛의 정확한 포인트를 챙겨서 그나마 좀 즐긴 기억은 있으나, 그 외는 먹는 즐거움은 거의 못 느끼는 것 같다. 카!!!

여하튼 새벽, 속이 살짝 더부룩하니 아침은 굶어야겠다. 몸이 정확하게 반응해 주니 감사하다 해야 할지, 여전히 까탈스러운 몸에 경배해야 할지 대략 난감이다만. 그럼에도 살이 찌는 것은 또 뭘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공식처럼 딱딱 맞는 것은 없나 보다. 이 세상에는.

눈부신 여름날 새벽을 맞았지만 나는 속이 더 불편해질까 노심초사한다. 백스텝 하여 어제저녁을 다시 맞는다면 안 먹겠지. 아니 안 샀겠지. 남은 소시지는 어쩌지. 또 고민거리 하나 가져왔네. 끄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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