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메달 Aug 12. 2020

나비난의 인연, 생명체

내 손에서 나비난은 오늘도 숨을 쉬고 있다 


나에게만 오면 죽는 화초, 5년 이상 살고 있다. 

또 인연의 고리는 생명줄을 타고 머문다 



유일한 베란다, 안방 작은 틈새 공간에 초록이는 이렇게 있다


사실 내가 식물을 키우게 될 줄 몰랐다

누구나 물만 주면, 혹은 물만 안 주면 자란다는 화초는 언제나, 어김없이 내 손에만 오면 죽었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썩어 죽고, 물을 너무 안 줘서 말라비틀어져서 죽었다. 그냥 소위 말하는 떵손이었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 집에, 내 손에 화초는 없다고 다짐했다. 키우는 것은 고사하고, 길거리 접시꽃 보고도 나팔꽃이냐고 물어보고, 길거리 철쭉을 보고도 저것은 왜 흰색이냐, 저것은 왜 분홍이냐고 했다. 철쭉을 교과서에서 이름으로만 알았지 봄에 지천에, 심지어 우리 집 아파트 화단에도 피는 꽃인지 몰랐다. 한 마디로 식물이나 화초에는 그냥 일자무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화초를 자식처럼 키우는, 혹은 죽어가는 화초도 귀신처럼 살려내는 지인이 작은 화분을 하나 주었다. 첫 번째 받은 화초를 알 총같이 죽여버려서 도저히 받을 용기가 안 났는데, 사무실에 성큼성큼 자란 화초 뿌리를 뚝뚝 따서는 정말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몇 촉을 주었다.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소 생명을 중시 여기는 성격이니 잘 키울 겁니다. 이것이 생명이다 생각하고 정성을 들여 보세요. 쉬워요. 이것은 여기 화분에서 뚝뚝 떼어 주는 것이니 부담 안 가져도 되고요, 그냥 연습이다 생각하세요. 혹이나 또 죽으면, 또 이야기하세요. 또 드릴게요"


작은 화초에 얼마나 큰 생명력을 담아서 주든지, 나는 받는 즉시 부담스러웠고, 가슴이 답답했다. 이것이 두 번째 화초이다. 처음 받은 화초는 일산 고양까지 가서 사 온 화분이었다. 연두색 빛깔의 형광색을 뗘서 그 빛깔이 너무 곱다면서 사 준 화분이었다. 거기에 플라스틱 화분이 책상 위에서 예쁘지 않다면서 굳이 검은색 사기 화분으로 분갈이까지 해서 사 준 화분이었다. 그 와중에 꽃집 빈 화분을 하나 깨 먹기까지 했다. 연두색에 딱 맞는 화분을 고른다며 이것저것 보다가 연분홍색 화분이 깨졌다. 화분은 깨졌으나 여의치 않았고, 계산할 때 물어 드릴게요, 하는 한 마디로 상황이 끝났다. 지켜보던 나만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 아이 이름은 콩고 그린이었다. 


첫 번째 내게 온 콩고 그린. 무성한 잎에 빛나는 연둣빛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었다. 마지막에는 영양소까지 처방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쏘리 


콩고 그린 다음에 받은 것이 나비난이다. 또 다른 이름이 있던데. 역시나 그 이름은 까먹었다. 여하튼 그런 전후 사정을 담고서 그 나비난은 우리 집에 왔는데 이것이 정말 번식력이 대단했다. 준 사람 말처럼 정말 나는 화초를 생명이다, 생각하고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저 화분부터 봤다. 


나비난의 변천사


나비난, 5년 전에 와서 지금의 큰 화분으로 옮기기 전에 두 번의 분갈이가 있었다. 원래는 플라스틱 화분이었으나, 콩고 그린을 담았던 그 검은색 화분에 다시 옮겨 담았다. 


찌그러지는 플라스틱 작은 화분에 촉을 담아서는 가슴에 품고 들고 왔다. 시청 화분 병원 가서 콩고 그린을 죽였던 그 검은색 화분에 분갈이를 하고는 아침에 눈만 뜨면 들여다봤다. 콩고 그린을 먼저 죽인 원죄가 있어서 이것마저 죽어버리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고, 생명 존중 운운하며 줬던 내 평소의 모습이 온전한 허세로 보일 것 같았다. 소위 관계가 깨지겠다는 걱정이 더 원초적 본능이었던 것 같다. 결론은 2005년 봄에 와서 2020년 지금까지 저 상태에서 잘 자라서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도 하고 그 사이 여러 촉을 수경으로 키우기도 하고, 사이에 지인에게 촉을 분양하기도 했다. 

조금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도 하고, 촉을 떼어 수경재배도 하고 정말 씩씩하게,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문제가 생겼다. 냉해를 입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19년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면서 베란다에서 실내로 옮겨야 되는데 12월이 될 때까지 그 아이들을 밖에 그냥 두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냉해를 입었다. 너무 속상해서 울었고, 또다시 방치하고 무시 꿀꺽 해 버린 내가 미워서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물론 다른 화초들도 마찬가지로 냉해를 입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방법이 없었다. 제일 걱정되는 이 아이의 응급조치를 위하여 욕실에 들고 왔고, 욕실 온기를 며칠 느끼게 하면서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냉해를 입었다. 욕조에 올려두고 물을 충분히 주고 욕실 따스한 기운을 그대로 받게 며칠 두었다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더니만, 이 아이는 구사일생으로 정말 자연적으로 소생했다. 욕실의 따뜻한 온기를 맞으면서 조금씩 색의 변화가 왔고.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쉽게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소소한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불끈 들어서 거실로 다시 자리를 옮겼고. 다시 아침에 눈만 뜨면 이 아이에게 인사하는 일상은 시작되었다. 제발 살아주세요, 하는 간절한 기도와 정성을 알았을까. 거짓말처럼 이 아이는 살았다. 딱히 다른 응급조치를 한 것은 없다. 콩고 그린 경험에 의해서 보니 화초가 아픈데 영양을 급하게 투입하니, 그 영양분을 못 견디는 것 같더라. 오히려 영양제 꽂고 그다음 날 바로 시들시들해진 경험을 해 본 터라 이번에 나비난에는 아무것도 안 했고, 아침에 작은 분무기(생활 분무기)로 수분 정도 투입했고, 마른 수건으로 입을 깨끗하게 닦아주었고, 보름이 좀 지나서 다시 불끈 들어서 욕실에서 물을 흠뻑 주고 따스한 온기를 하루 스치게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역시 생명체였어


감사하게도 구사일생으로 잘 자라고 있다



감사하게도 구사일생으로 다시 살아났다. 저 아이와 같이 냉해를 입어 시들시들했던 다른 아이들도 다시 살아났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올해 같은 코로나 정국에 이 아이들이 작년 12월을 기점으로 죽었더라면 기운이 더 떨어져서 낙이 없었을 것 같다. 2020년 구정에 우리 집에 온 일가친척들이 한결같이 안타까워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걱정들까지, 그 안타까움까지 고이 받아서 이 아이들은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이제는 함부로 방치하는 일이 없도록 잘 챙기겠다는 다짐을 또 하고, 또 했다. 결국 애초에 나에게 화초를 챙겨준 지인의 말처럼 "생명에 정성을 담는 성격이 있으니 분명히 잘 키울 것입니다"라고 한 말이 모든 동기부여가 되었다. 식물에 대한 절대적 환대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절대적 환대를 해 주었고, 나는 그 환대를 온전하게 믿었던 것 같다. 내 손에만 오면 뭐든 죽어나가던 그 화초들에게 삼가 애도의 마음을 담으며, 나비난 이후에 이제는 제법 초록이 키우는 재미를 온몸으로 느끼며 그나마 나랑 같이 동고동락하는 일상을 하고 있으니, 애초에 화초 준 지인에게 엎드려 절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준 그들에게도 온 마음으로 감사인사를 한다. 쌩큐 베리 마치.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 또 배웠다. 



귀한 생명의 원초적 본능을 또 돌아다본다. 온통 감사할 투성이다. 프랜테리어 공간을 보여준 게 아니라 온통 공간적 감정을 쏟아낸 것 같다. 그러든지 말든지 덕분에 나는 기억을 추억하는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잘 크고 있죠? 잘 키울 줄 알았어요. 그거 나눔 해서 수경으로 키워도 예뻐요"


"네, 잘 크고 있습니다. 수경으로도 키웠고, 꽃도 피고, 주변에 나눔 하기도 했어요." 


 

전화기 너머 씩씩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인연은 또 그렇게 작은 고리 하나를 만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이 육체를 무너지게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