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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Aug 27. 2020

그린콩고 넘어서, 나비난으로

나도 살릴 수 있더라

내 손에만 오면 죽는 화초, 무려 5년 이상 살고 있다. 

그 방법은 무엇인지, 또 인연의 고리는 생명줄을 타고 머문다 

유일한 베란다, 안방 작은 틈새 공간에 초록이는 이렇게 있다
사실 내가 식물을 키우게 될 줄 몰랐다


사실, 내가 식물을 키우게 될 줄 몰랐다.

누구나 물만 주면혹은 물만 안 주면 자란다는 화초는 언제나어김없이 내 손에만 오면 죽었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뿌리가 썩어 죽고, 물을 너무 안 줘서 말라비틀어져서 죽었다. 그냥 소위 말하는 떵손이었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 집에, 내 손에 화초는 없다고 다짐했다. 키우는 것은 고사하고, 길거리 접시꽃 보고도 나팔꽃이냐고 물어보고, 길거리 철쭉을 보고도 저것은 왜 흰색이냐, 저것은 왜 분홍이냐고 했다. 철쭉을 교과서에서 이름으로만 알았지 봄에 지천에, 심지어 우리 집 아파트 화단에도 피는 꽃인지 몰랐다. 한 마디로 식물이나 화초에는 그냥 일자무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화초를 자식처럼 키우는, 혹은 죽어가는 화초도 귀신처럼 살려내는 지인이 작은 화분을 하나 주었다. 첫 번째 받은 화초를 알 총같이 죽여버려서 도저히 받을 용기가 안 났는데, 사무실에 성큼성큼 자란 화초 뿌리를 뚝뚝 따서는 정말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몇 촉을 주었다.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소 생명을 중시 여기는 성격이니 잘 키울 겁니다.
이것이 생명이다 생각하고 정성을 들여 보세요. 쉬워요.
이것은 여기 화분에서 뚝뚝 떼어 주는 것이니 부담 안 가져도 되고요,
그냥 연습이다 생각하세요.
혹이나 또 죽으면, 또 이야기하세요.
또 드릴게요"

콩고 그린은 그렇게 왔다 

작은 화초에 얼마나 큰 생명력을 담아서 주든지, 나는 받는 즉시 부담스러웠고, 가슴이 답답했다. 이것이 두 번째 화초이다. 처음 받은 화초는 일산 고양까지 가서 사 온 화분이었다. 연두색 빛깔의 형광색을 뗘서 그 빛깔이 너무 곱다면서 사 준 화분이었다. 거기에 플라스틱 화분이 책상 위에서 예쁘지 않다면서 굳이 검은색 사기 화분으로 분갈이까지 해서 사 준 화분이었다. 그 와중에 꽃집 빈 화분을 하나 깨 먹기까지 했다. 연두색에 딱 맞는 화분을 고른다며 이것저것 보다가 연분홍색 화분이 깨졌다. 화분은 깨졌으나 여의치 않았고, 계산할 때 물어 드릴게요, 하는 한 마디로 상황이 끝났다. 지켜보던 나만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 아이 이름은 콩고 그린이었다. 






콩고 그린 다음에 받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을 나비난이라고도 하고, 또 뭐라고 하던데. 역시나 그 이름은 까먹었다. 여하튼 그런 전후 사정을 담고서 그 나비난은 우리 집에 왔는데 이것이 정말 번식력이 대단한 것이다. 정말 준 사람 말처럼 나는 화초를 생명이다, 생각하고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저 화분부터 봤다. 


나비난의 변천사를 보면 



이 역시 찌그러지는 플라스틱 작은 화분에 촉을 담아서는 가슴에 품고 들고 왔다. 시청 화분 병원 가서 콩고 그린을 죽였던 그 검은색 화분에 분갈이를 하고는 아침에 눈만 뜨면 들여다봤다. 콩고 그린을 먼저 죽인 원죄가 있어서 이것마저 죽어버리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고, 생명 존중 운운하며 줬던 내 평소의 모습이 온전한 허세로 보일 것 같았다. 소위 관계가 깨지겠다는 걱정이 더 원초적 본능이었던 것 같다. 결론은 2005년 봄에 와서 2020년 지금까지 저 상태에서 잘 자라서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도 하고 그 사이 여러 촉을 수경으로 키우기도 하고, 사이에 지인에게 촉을 분양하기도 했다. 



문제가 생겼다. 냉해를 입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19년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면서 베란다에서 실내로 옮겨야 되는데 12월이 될 때까지 그 아이들을 밖에 그냥 두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다. 냉해를 입었다. 너무 속상해서 울었고, 또다시 방치하고 무시 꿀꺽 해 버린 내가 미워서 용서가 안 되는 것이다. 물론 다른 화초들도 마찬가지로 냉해를 입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방법이 없었다. 제일 걱정되는 이 아이의 응급조치를 위하여 욕실에 들고 왔고, 욕실 온기를 며칠 느끼게 하면서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살려만 주세요.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더니만, 이 아이는 구사일생으로 정말 자연적으로 소생했다. 욕실의 따뜻한 온기를 맞으면서 조금씩 색의 변화가 왔고. 모르긴 몰라도 이렇게 쉽게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소소한 믿음이 생기는 것이다. 불끈 들어서 거실로 다시 자리를 옮겼고. 다시 아침에 눈만 뜨면 이 아이에게 인사하는 일상은 시작되었다. 제발 살아주세요, 하는 간절한 기도와 정성을 알았을까. 거짓말처럼 이 아이는 살았다. 딱히 다른 응급조치를 한 것은 없다. 콩고 그린 경험에 의해서 보니 화초가 아픈데 영양을 급하게 투입하니, 그 영양분을 못 견디는 것 같더라. 오히려 영양제 꽂고 그다음 날 바로 시들시들해진 경험을 해 본 터라 이번에 나비난에는 아무것도 안 했고, 아침에 작은 분무기(생활 분무기)로 수분 정도 투입했고, 마른 수건으로 입을 깨끗하게 닦아주었고, 보름이 좀 지나서 다시 불끈 들어서 욕실에서 물을 흠뻑 주고 따스한 온기를 하루 스치게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역시 생명체였어.



감사하게도 구사일생으로 다시 살아났다저 아이와 같이 냉해를 입어 시들시들했던 다른 아이들도 다시 살아났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올해 같은 코로나 정국에 이 아이들이 작년 12월을 기점으로 죽었더라면 기운이 더 떨어져서 낙이 없었을 것 같다. 2020년 구정에 우리 집에 온 일가친척들이 한결같이 안타까워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걱정들까지, 그 안타까움까지 고이 받아서 이 아이들은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이제는 함부로 방치하는 일이 없도록 잘 챙기겠다는 다짐을 또 하고, 또 했다. 결국 애초에 나에게 화초를 챙겨준 지인의 말처럼 "생명에 정성을 담는 성격이 있으니 분명히 잘 키울 것입니다"라고 한 말이 모든 동기부여가 되었다식물에 대한 절대적 환대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절대적 환대를 해 주었고나는 그 환대를 온전하게 믿었던 것 같다. 내 손에만 오면 뭐든 죽어나가던 그 화초들에게 삼가 애도의 마음을 담으며, 나비 난 이후에 이제는 제법 초록이 키우는 재미를 온몸으로 느끼며 그나마 나랑 같이 동고동락하는 일상을 하고 있으니, 애초에 화초 준 지인에게 엎드려 절 한다. 그리고 다시 살아준 그들에게도 온 마음으로 감사인사를 한다. 쌩큐 베리 마치.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또 배웠다이 귀한 생명의 원초적 본능을 또 돌아다본다. 


"잘 크고 있죠? 잘 키울 줄 알았어요.
그거 나눔 해서 수경으로 키워도 예뻐요"



네, 잘 크고 있습니다. 수경으로도 키웠고, 꽃도 피고, 주변에 나눔 하기도 했어요. 전화기 너머 씩씩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인연은 또 그렇게 작은 고리 하나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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