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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Sep 23. 2020

결국은 취소된 타인의 강의를 보면서

우리들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최근 ○○시 교육청 강의 취소건을 보면서 여러 생각들을 했다. 소위 독자들의 반격이다. 어느 책에서, 어느 글에서 읽었는지 기억이 애매한데 검열이 소위 예전에는 관에서 이루어졌다면 이제 바야흐로 검열은 시민들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그런 문장, 그때 공감했다. 딱 그런 일이 벌어졌다. 맞다 안 맞다는 도덕적 잣대를 떠나서 시민들이 엄청 똑똑해진 것은 사실이다.

표절 시비나 거짓말 시비들이 인터넷 시대 살면서 여기저기 흔적으로 남아있으니 그 흔적은 언제나 꼬리표로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바람직한 현상이기도 하고, 무서운 현상이기도 하다.

글을 쓸 때 남의 문장을 굳이 많이 인용하거나, 남의 책을 많이 갖다 붙여 쓰면 그게 멋져 보인다는 착각은 저자가 만들어 둔 토양인지, 독자가 만들어 둔 바탕인지 그게 아리송이기는 하다. 글에 겉멋이 들어간 것을 우리 독자들이 좋아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 글의 겉멋을 저자 스스로 이래저래 바탕을 깐 것을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3년 전에도 책을 쓰다가 엎은 것이 딱 이런 경우였거든. 남의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책이라는 틀을 두고 글을 쓰기 시작하니 이게 내 글인지 남의 글인지 당체 분간이 안 가는 정체불명의 문장이 되어서 너무 웃기더라고. 딱 허세 작렬 글이다 싶어서 쓰다가 말았다. 이런 글은 굳이 내가 쓰지 않아도 쓸 사람이 많겠다, 하는 생각들. 그때가 표절이니 인용이니 하는 것들이 시끄러울 무렵이었다.

요즘 제법 책을 읽으면서 다시 느끼는 것은 남의 책을 많이 언급하는 것, 그거 가끔은 껄그럽기도 하더라. 또한 읽는 것에 대한 우쭐거림은 없나 하는 생각을 또 하게 되었다. 나 역시 남들이 보면 그 우쭐거림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겠으나 나는 그거 어릴 때 자연스럽게 버려진 것 같다. 이론적 말의 논쟁으로 치열하게 싸움하는 토론 문화를 비교적 어릴 때부터 경험하면서 그거 다 '있어 보이기 위한 자기 방어기제'라는 생각을 했다.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글쟁이, 책쟁이들의 향연은 진짜 많이 보고 겪었다. 오죽하면 한동안 글쟁이들을 멀리하고 살았을까.

여하튼 우리 시의 강의 취소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럼 그 저자는 앞으로 강의로 밥은 못 먹고살겠구나, 하는 생각과 그럼 그 사람은 뭘 해야 다시 그 바닥에서 일할 수 있지, 하는 생각들. 모 기업에서 한 강의를 영상으로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만 선과 악의 구분의 선들이 참 다채롭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침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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