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창고
무드등을 켜둔 채, 새벽을 건너는 중이다.
작은 조명 아래, 나의 그림자는
나보다 훨씬 커져 있다.
마치 나를 집어삼키려는 짐승처럼,
침묵 속에서 서성인다.
낮의 나는 분주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웃어야 할 때 웃고, 말해야 할 때 말하고,
해야 할 일을 꽤 성실하게 해낸다.
그러나
밤의 나는 조금 다르다.
해가 지고, 온 세상이 고요해지면
나의 그림자는 점점 거대해진다.
그림자는 나보다 먼저
내 안의 어두운 것들을 알아채고,
내가 모르는 나를 꺼내어 보여준다.
가끔은
그림자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생각이 든다.
억눌러둔 불안, 감춰둔 상처,
다 말하지 못한 말들과
끝내 울지 못한 눈물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그림자의 살갗 아래
숨 쉬고 있다.
그림자와 싸우는 건,
결국 나와 싸우는 일이다.
내가 나를 견디는 일.
나에게 진실해지기를 망설이는
나를 마주하는 일.
그래서 오늘 새벽도,
나는 나의 그림자와 대화를 시도한다.
잠들지 않는 시간,
고요 속에서
빛은 점점 희미해지고
그림자는 더욱 또렷해진다.
나는 묻는다.
“오늘은 좀 괜찮았니?”
그림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침묵 속에 담긴 대답을.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했다고.
이 새벽이 지나면,
그림자는 다시 작아질 것이다.
조명이 꺼지고, 해가 뜨면
그림자는 내 발끝에 바짝 붙어
말없이 따라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 거대한 그림자와 함께 있는 나는
어쩌면 가장 솔직한 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매일 밤,
나는 나의 그림자와 싸우고,
나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