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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그림자였다.

습작의 창고

by 나바드

질투는 나의 그림자였다


무드등을 켜둔 새벽이다. 조용한 방 안, 희미한 불빛이 벽에 그림자를 만든다. 나는 앉아 있고, 그림자는 내 위에 드리워져 있다. 마치 나를 노려보는 짐승처럼. 오늘도 나는 나의 그림자와 싸운다. 진 것이 분명한 싸움을.


기형도 시인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을 처음 읽었을 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그 문장 하나하나가 내 안에 박혔다. 날마다 무너지는 감정을 움켜쥐고 살아가던 나에게, 누군가의 고백이 한 줄기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그는 말했다. "죽은 듯 살아 있어도 나는 질투를 했고, 그것은 나의 힘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따라 중얼거렸다. 질투가 나의 힘이라면, 고통은 나의 날개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수면제, 우울증 치료제, 신경안정제, 불안진정제를 복용하고 있다. 약의 힘으로 잠드는 밤은, 나를 구원하지 않는다. 깊게 잠들어도, 꿈속에서조차 편하지 않다. 무거운 눈꺼풀을 뜨고 일어나는 아침은 고통의 연속이다. 마치 매일 매일 죽음을 기념하는 의식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 나의 삶과 생에 대해 생각한다. 왜 살아야 하지? 살아야 할 이유는커녕, 살아도 괜찮다는 허락조차 받지 못한 기분이다. 거리엔 햇살이 있고, 사람들은 웃고 떠드는데, 나는 그 장면들 안에 끼어들 수 없다. 멀리서 보는 삶은 언제나 남의 것이다. 나의 삶은 흐릿하고 지워진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기형도 시인은 그 고요한 감정의 그림자를 ‘질투’라고 불렀다. 나 역시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 내 안을 떠돌 때, 그것을 붙잡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생존이다.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 견딜 수 있는 척을 그만두고, 솔직해질 수 있는 유일한 행위다.


가끔은 이렇게 쓰는 글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읽히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내가 나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처럼, 한 줄이라도 남기고 싶다. 나를 잊지 않기 위해. 아니, 나라는 존재가 분명히 여기에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무드등을 켠다. 그림자는 여전히 나보다 크고, 나는 여전히 그 안에서 떨고 있다. 하지만 이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기형도의 그림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내 그림자와 끝까지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버티는 나날이, 어쩌면 나를 구원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아주 조금은 가져본다. 아주, 조금은.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오마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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