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의 창고
명의는 아픈 부위만 도려낸다
집에 경찰들이 있다. 그래서 경찰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제복을 입은 채 순직한 경찰이나 소방, 군인의 이야기를 들을 땐 마음이 무겁다. 아니, 모든 제복 공무원의 죽음은 그 자체로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런 댓글이 익숙해졌다.
“마땅히 그랬어야지.” “국민의 봉사자 아니냐.”
하지만 묻고 싶다. 경찰은 목숨이 두 개인가?
그들도 돌아가면 누군가의 남편, 아내, 부모, 자식, 형제, 자매, 친구다. 그들을 향한 무조건적인 희생을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회는,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서 정작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숭고한 희생에 감사조차 잊어버린다.
명의는 아픈 부위만을 자른다.
돌팔이는 모든 걸 잘라낸다.
우리는 불과 몇 해 전, 집단적 열광 속에서 ‘모든 걸 도려낸’ 사례를 봤다. 언론의 펜대는 여론을 돌풍처럼 몰고 갔고, 한 대통령은 해경 전체를 없애버렸다. 해경이 잘못한 건 맞다. 하지만 그건 ‘도려내야 할 아픈 부위’였다. 전체를 날려버리는 건 명의가 아닌 돌팔이의 방식이다. 그때 해경은 없어졌고, 국민은 ‘속 시원하다’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몇 년 뒤, 우리는 해경을 다시 부활시켜야 했다. 시간과 돈은 물론, 국민의 안전도 공백을 겪었다.
이번엔 경찰이다.
2025년 예산안에서 경찰의 특수활동비 31억 6700만 원이 전액 삭감됐다. 물론 특활비를 투명하게 사용하지 않는 일부가 있다. 그러나 그건 ‘일부’다.
대부분의 경찰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법의 사각을 메우기 위해 이 비용을 사용한다.
특히 마약 수사는 그렇다. 한국은 원칙적으로 함정수사가 금지되어 있지만, 마약 수사만은 예외로 인정된다. 경찰은 텔레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접선하고, 위장 구매를 시도하고, 조직을 추적하고, 끝내 검거한다. 이 모든 과정을 누군가 샅샅이 들여다보고, 예산 사용처를 낱낱이 공개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건 곧 범죄자에게 ‘잡히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는 셈이다.
문제는 잘라내는 방식이다.
잘못된 몇몇을 이유로, 전체를 도려내는 방식.
그건 의술이 아니라 복수다. 감사하고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지, 존재 자체를 부정해선 안 된다. 특활비가 악용된다면, 악용을 막는 장치를 설계해야 한다. 왜 자꾸 명의를 버리고, 돌팔이를 선택하려 하는가.
도박, 마약, 밀수는 ‘보이지 않는 피해자’를 낳는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마약은 자기 몸에 해로운 거지, 남한테 피해 준 건 아니잖아.” “도박이나 밀수도 개인 선택이잖아.”
하지만 그런 범죄는 늘 ‘암수범죄’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사회의 뿌리를 서서히 썩게 만든다. 국가는 국민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제도와 수단을 갖춰야 하고, 수사권이 있는 기관은 그 선도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현장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요즘 경찰 내부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은 더 많은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정작 준비는 부족했다. 전문 인력도 부족하고, 시스템도 혼란스럽다. 형사과는 지능범죄까지 맡고, 지역경찰은 수사부서와 함께 법령을 뒤적이며 고민한다. 그 누구도 제 역할을 온전히 못하는 구조다.
그러니 MZ세대 경찰들이 대거 사직서를 낸다.
썩은 곳이 많다고 해서
나라 전체를 뜯어낼 수는 없다. 이제는 손을 대야 할 곳과 건드려선 안 될 곳을 구분할 줄 아는
진짜 ‘정치’가 필요하다.
현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작고, 여의도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하지만 제발, 한 번쯤은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지금 지하철 요금이 얼마인지, 주유소 리터당 기름값이 얼마인지조차 모른 채 국가 예산과 수사권, 특활비를 다룬다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끝으로
나는 그저 평범한 시민이다.
전문가도, 정치인도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은 보통의 보편적인 국민으로서,
‘대단히 똑똑한 분들’께 보내는 진심 어린 읍소다.
“제발, 명의의 손으로 이 나라를 고쳐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