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 사이
이른 저녁, 계동리는 조금씩 어둠을 머금기 시작했다. 주인장은 가게 문을 열며 바깥공기를 들이마셨다. 오늘따라 계동의 하늘은 깊은 주황빛을 띠고 있었고, 거리는 바쁜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때, 멀리서 기타 선율이 들려왔다. 북촌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김민석이 가게 맞은편에서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고, 사람들은 길을 멈추고 노래를 들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계동리를 지나던 최소현이 발길을 멈췄다.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동네를 살리기 위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그녀는 문득 김민석의 음악에 이끌렸다.
가방을 뒤적이던 그녀는 지갑이 없다는 걸 깨닫고, 코트 주머니 속에서 최근에 개업한 설계사무소 명함과 작은 쿠키 몇 개를 꺼냈다. 조용히 다가가 그의 버스킹함에 그것들을 넣은 뒤, 다시 가던 길을 걸었다. 김민석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지만, 짧은 미소를 머금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편, 계동리 안에서는 늘 그렇듯 단골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병원의 응급의학과 의사 김봉준과 마취과 의사 임수정이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좀 일찍 끝났어요. 오래간만에 여유로운 밤입니다." 김봉준이 말했다.
"그렇다면 건배해야죠." 임수정이 맥주잔을 들며 웃었다.
그들의 대화가 이어질 때쯤, 가게 문이 다시 열리며 H건설사의 팀장 오경식과 팀원 최준혁, 최소진이 들어왔다.
"오늘도 한잔해야죠. 너무 힘든 하루였어요." 오경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곳만큼 술이 맛있는 곳이 없어요." 최준혁이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는 동안, 구석진 자리에서는 방송국 PD 이희재가 노트북을 열고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계동리의 분위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기획 중이었다.
"사장님, 정말 생각 없으세요? 이곳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남기면 좋을 텐데."
주인장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잔을 닦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술을 다 마시고도 그런 이야기를 하실 겁니까?"
이희재는 피식 웃으며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밤이 깊어가며, 계동리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