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이 부는 밤
차가운 겨울바람이 계동길을 스쳐 지나갔다. 가게 앞에 걸린 작은 종이 문이 열릴 때마다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냈다. 바 안에서는 은은한 조명이 따뜻하게 공간을 감싸고, 커피 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구수한 향이 가득했다.
주인장은 커피를 내리며 문득 가게 창가를 바라보았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속에는 두툼한 코트를 여미며 걸어가는 사람들, 손을 모아 입김을 불어넣는 연인들, 그리고 멀리서 조용히 기타를 조율하는 한 사람이 보였다. 김민석이었다.
그가 가끔씩 계동리 앞에서 버스킹을 할 때면,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음악을 감상하곤 했다. 오늘도 그는 기타 줄을 튕기며 천천히 멜로디를 맞춰 나갔다. 주인장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테이크아웃 컵에 담았다.
가게 문이 다시 열리며 첫 손님이 들어왔다.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의사 김봉준과 마취과 의사 임수정’이었다. 두 사람은 두꺼운 패딩을 벗으며 자리에 앉았다.
“밖이 정말 춥네요.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김봉준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주인장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요즘 응급실은 어때요?”
“뭐, 겨울이라 감기 환자도 많고, 술 마시다 다친 사람들도 많아요.” 임수정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럴 때일수록 몸을 더 챙겨야 하는데 말이죠.”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가게 문이 다시 열렸다. ‘계동리 근처에서 작은 중고서점을 운영하는 정현수’가 들어왔다. 그는 언제나처럼 헌책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여기 오면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기분이라, 오늘도 들렀어요.”
주인장은 그에게 자리 하나를 내어주고, 따뜻한 홍차 한 잔을 건넸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고 오셨어요?”
“오늘은 헤밍웨이 단편집을 봤어요. 그런데요, 사장님.” 정현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이곳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네요. 마치 한 편의 소설 같달까요?”
주인장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오니까요. 계동리는 그런 곳이죠.”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밖에서는 김민석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가게 안에 있던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문이 열리며 ‘최소현 건축가’가 들어왔다. 그녀는 버스킹을 하던 김민석을 보며 한동안 서 있다가 조용히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노래가 참 좋네요.” 그녀가 창가에 앉으며 말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에요.”
주인장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라떼를 건넸다.
“그 사람, 자주 여기서 연주하죠?”
“네, 가끔씩 와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위로도 없으니까요.”
창밖에서는 김민석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이어가고 있었다. 계동리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