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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계동길

스쳐 가는 사람들, 머무는 사람들

by 나바드

계동리의 밤은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아늑했다. 따뜻한 조명 아래에서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커피 머신이 뿜어내는 고소한 향이 가게 안을 감싸고 있었다. 주인장은 언제나처럼 바 뒤에서 잔을 닦으며, 오늘의 첫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 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들이 들어왔다. ’ 서울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의사 김봉준과 마취과 의사 임수정‘이었다. 하루 종일 응급실을 뛰어다닌 듯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도 한잔해야죠, 사장님."


김봉준이 힘없는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주인장은 아무 말 없이 잔을 꺼내고, 조용히 위스키를 따랐다. 그리고 추워 보이는 임수정에게는 따뜻한 유자차를 건네며 히터 방향을 그녀 쪽으로 살짝 틀어주었다.


"요즘 취업 준비하는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참 복잡해요."


임수정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우리도 힘들게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경쟁도 심하고, 기회도 적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이 다시 열렸다. ’한 손에는 노트를 들고, 다른 손에는 펜을 만지작거리는 한 청년.‘ 작가 지망생이었다.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아 익숙한 듯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글은 잘 써가고 있어요?" 주인장이 가볍게 물었다.


"글쎄요. 쓰긴 하는데, 이게 좋은 글인지 잘 모르겠어요."


작가 지망생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오늘은 조금 막혀서 그냥 공기라도 바꿔볼까 하고 왔어요. 여기 커피 향이 좋잖아요."


그 순간, 가게 문이 다시 열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H건설사의 팀장 오경식과 팀원 최준혁, 최소진, 그리고 계동리 근처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 박성호.‘


"오늘은 가볍게 맥주 한 잔만 하려고요." 오경식이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박성호는 피곤한 얼굴로 숨을 돌리며 말했다. "저는 계동리 오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술 한 잔 마실 수 있어서 좋아요. 가게 운영이 쉽지가 않거든요."


주인장은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다가, 박성호에게 시원한 얼음물과 함께 작은 쿠키를 내어주었다. "오늘은 특별 서비스예요. 힘내세요."


그들의 대화가 오가는 사이,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나이가 지긋한 남성이 들어왔다. ‘곧 정년을 앞둔 가장 박철수.’ 그는 조용히 자리에 앉아 막걸리를 주문했다.


"퇴직이 얼마 안 남았어요." 박철수는 허허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동안 열심히 달려왔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가게 안은 어느새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이곳에서만큼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부자(父子) 한 쌍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지만, 주인장이 조용히 따뜻한 차를 내어주자 조금씩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버지, 사실 저도 제 방식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래, 알지. 나도 네가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은 했어. 다만..."


오해와 거리감 속에서도, 두 사람은 조용히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주인장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카운터 아래 서랍에서 작은 머리끈 하나를 꺼내, 방금 들어온 여자 손님에게 건넸다.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손님들은 아무 말 없이 주인장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계동리에는 ‘스쳐 가는 사람도 있고, 머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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