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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문턱

최고의 쾌락과 행복은 무엇인가

by 나바드

어느 날, 철학자들이 모인 광장에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


“최고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광장은 두 개의 거대한 깃발로 나뉘었다. 한쪽은 ‘양적 행복을 추구하는 벤담과 스미스’, 그리고 다른 한쪽은 ‘질적 행복을 중요시하는 밀과 에피쿠로스’가 서 있었다.


양이 중요하다!


벤담이 먼저 입을 열었다.


“행복이란 결국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행복을 최대한 많이 창출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얻는 즐거움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사람이 기쁨을 느낄수록 그것이 곧 사회의 발전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끄덕이며 그의 논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애덤 스미스가 나서서 덧붙였다.


“그렇습니다!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면 사회 전체의 이익이 커집니다. 경제가 성장하고 모두가 부유해진다면, 그만큼 더 많은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간단했다. “행복이란 많이 가질수록, 많이 누릴수록 좋은 것이다.”




질이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존 스튜어트 밀이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벤담, 당신은 쾌락이 많을수록 행복이 크다고 하지만, 그것이 정말 맞을까요? 돼지가 배부른 것과 인간이 불만족스러워하는 것은 같은 수준에서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의 말에 광장의 일부 사람들이 수긍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밀은 덧붙였다.


“단순히 즐거움의 총량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은 아닙니다. 우리는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술, 철학, 깊이 있는 사고에서 오는 만족이 단순한 쾌락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것입니다.”


이때, 에피쿠로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쾌락의 질을 따진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지속적인 평온함과 내면의 충만함을 찾아야 합니다. 일시적인 쾌락이 아니라, 고요하고 충만한 삶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행복입니다.”


광장은 다시금 양쪽의 논리에 대해 고민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광장의 선택


양적 행복을 중시하는 쪽은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논리를 내세웠고, 질적 행복을 중시하는 쪽은 인간의 깊은 내면을 강조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에 따라 고민했다. ’ 많은 쾌락이 행복일까? 아니면 깊이 있는 만족이 진정한 행복일까?‘


그리고 나는 두 깃발 앞에서 고민하다가, 한쪽 깃발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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