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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분크리에이터 May 01. 2020

새로운 삶을 찾게 해 준 첫 배낭여행

배낭여행은 인도지!   

2013년 겨울.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나는 라이프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 중이었다. 당시 직장은 서울 신당동에 위치한 공연장. 신혼집은 인천 제물포역 부근에 있는 아내의 작은 빌라였다.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꼬막 두 시간을 지하철로 이동해야 출근할 수 있었고, 6시에 퇴근하면 밤 8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왕복 네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며 고단함과 불안함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신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 목을 축이려고 생수를 찾으면 아내가 “물은 꼭 생수를 마셔야 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지하철에서 서서 오느라 아팠던 다리가 천근의 무게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뒤에서 말을 잇는다. “아침마다 과일을 먹고 출근해야 해?” 오래전부터 아침식사를 사과나 제철과일로 간단하게 대신해왔는데 이제는 과일도 먹지 말아야 하나? 좋아하는 프로야구를 관람할 때면 아내는 “그런 거 좀 그만 보면 안 될까? 스포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정신세계가 이상한 것 같아”라며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기도 했다.     

 

그 당시 내가 아내와 가장 첨예하게 부닥쳤던 일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배낭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2014년 5월에 한 달 일정으로 배낭여행을 가기로 결혼 전에 약속을 하고 조금씩 준비를 해왔는데, 아직까지 여행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조급함이 일기 시작했다. 해외여행 경험이 별로 없던 나는 스위스나 프랑스와 같은 안전하고 쾌적한 나라로 가면 좋겠다고 말했고, 아내는 인도나 몽골과 같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인도를 가장 먼저 가서 라다크 왕국이 있었던 북부 도시 레에서 히말라야를 즐기는 게 소원이라고 이야기했다. 의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아내는 인도를 가야 하는 이유를 거듭 이야기했고, 내가 유럽으로 가자고 하면 “그런 나라들은 나중에 나이 먹고 언제든 갈 수 있어. 젊었을 때는 험한 곳으로 가야 하는 거야!”라고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몇 번인가를 유럽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지만 아내는 목청을 높이며 화를 냈다. 시간이 촉박해지자 어쩔 수 없이 여행지가 인도로 정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나는 인도를 생각하면 할수록 무섭고 섬뜩하기만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인도 관련 기사들은 하나 같이 범죄 소식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탄 버스 안에서도 성폭행이 일어나는 끔찍한 나라라는 생각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어떤 날에는 꿈에서 검게 그을린 인도 남자들부터 돈을 빼앗기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그런 생각들이 강해지자 인도에 대한 공포심이 극에 달했다. 그러나 이미 아내는 론니 플래닛을 옆에 끼고 밑줄을 그어가며 인도 숙소와 식당을 알아보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어 아내와 담판을 짓기로 했다. “우리 인도 말고 다른 나라로 가면 안 될까? 인도에서 요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무척 위험하다고!” 아내는 내 말을 듣고 천천히 일어서더니 손에 쥐고 있던 론니 플래닛을 거실 바닥에 내동댕이 친 후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곤 방문을 걸어 잠그고 큰 소리로 우는 것이었다. 그때 결심했다. ‘아~ 죽더라도 인도에 가서 죽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두 달가량을 준비한 끝에 2014년 5월, 우리는 마침내 인도 뉴델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동안 태국과 호주, 일본을 출장으로 잠시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배낭여행은 처음이고, 또 한 달 가까이 장기간 여행을 떠나는 것도 첫 도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대성공이었다. 여행 중 위험하거나 불미스러운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인도의 히말라야 풍광에 완전히 빠져 레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도에 매료되었다. 바라나시와 마날리, 다람살라, 레 등 인도의 도시들은 나에게 독특한 풍광과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선물해주었다. 특히 히말라야를 끼고 있는 레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영혼의 성지답게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숨 쉬고 있는 안식의 도시였다. 지금도 힘든 일이 생기면 히말라야의 풍광을 떠올릴 정도로 인도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눈뜨게 했다. 반면 아내는 여행 중에 장염과 위염, 고산병, 생리통 등을 겪으며 응급실에 입원하는 등 많은 고생을 겪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를 인도로 이끌어준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다. 그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뉴질랜드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살고 있다. 비록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인도 여행은 나를 많은 면에서 바꾸어 놓았다. 인도를 다녀온 후 나는 매일 명상을 하며 고요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고, 감정치유 에세이를 발간하게 되었다. 인도 여행은 나에게 최고의 경험을 안겨준 축복 같은 여행이자 새로운 삶에 대한 영감을 심어준 행복한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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