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헤어짐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지난 시간에 대한 복기

by 경계선

감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세차게 휘몰아칠 수 있음을 처음 경험했다. 사랑이라고 생각을 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나는 매우 괴로웠으며 이 비정상적인 마음의 동요에 대처하는 법을 몰랐다. 흔한 말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든지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주 자연스러운 만남이었고, 굳이 연인이 아니더라도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는 관계였다. 그와의 첫 만남을 나는 이렇게 기억한다. 기억은 왜곡되고 나는 기억을 재구성하여 더없이 판타지로 만들고 말겠지만 말이다. 건물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지나며 그가 건넨 간단한 인사말, "안녕!"

그는 단정했으며 강직했지만, 때때로 흔들리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한마디 말에 더없이 귀를 기울였고, 그의 행동을 보고 배웠던 적이 많았다. 그와 만날 때에 나는 내 삶의 팔 할이 그였다. 그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배우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헤어진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만남이 자연스러웠던 만큼 인위로 연인이 되자고 정식으로 정돈된 마음으로 고백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헤어짐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많이 괴로워하고 많이 아파하고 또 그 시간과 기억을 붙들어보려 별별 애를 다 썼지만, 그것은 그것으로 마무리될 뿐. 헤어짐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나 나는 그의 흔적이 나에게 남아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를 그리워하는 일을 그만둔 건 제법 오래되었으나 그를 기억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의 헤어짐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너무도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이미 늦어버린 것에 대한 절절함이랄까. 그와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그 물음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 시간에 누군가를 절절히 사랑했던 나에 대한 나르시시즘은 아니었을까.



운전 중에 라디오에서 들려온 김동률의 'replay'라는 음악은 나에게 한참을 과거에 머물게 했다.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진다.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가 서서히 멈추고, 나는 숨을 몰아쉰다.


차 안에는 볼륨이 한껏 높아져있고 대부분의 김동률의 음악이 그렇듯이 감정을 몰아쳐 마지막에 모든 것을 터트리며 클라이맥스에서 곡이 끝난다. 음악은 어떠한 감정적 정리도 없이 마무리 되어버리고, 음악을 듣는 내게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 김동률은 늦어버린 것들에 대한 절절함을 그토록 진하게 토해내고 있었다. 이 곡은 어떠한 후련함마저도 있달까. 잃어버린 사랑은 다시 찾을 용기를 갖지만, 죽어버린 사랑은 그럴 수가 없다. 아마도, 이 곡은 아주 오래전 헤어짐에 대한 복기이자 제문(祭文) 같았다. 그를 위해, 혹은 그 시간의 나를 위해, 한바탕 눈물 흘릴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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