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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선 Nov 10. 2015

수다

사소함으로 자잘하게 이어지는 삶.

나는 평소에 말이 많은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낯을 가리는 편이어서 직장에서 동료들과도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은 아니다. (사실 직장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서 수다는 어쩌면 평소의 나에게 그리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다. 수다 떠는 일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온갖 잡다한 이야기들을 배설하여 늘어놓고 이야기들에 젓가락을 찔러대고 뒤집어보고 또 한번 뒤적거리게 되는, '말을 위해' 하는 말들이 수다가 되므로. 그럼에도 누군가를 견제하지 않아도 되고, 은밀한 목소리로, 혹은 은유와 레토릭으로 가득 찬 말에도 웃어 넘기며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대상이라면 '단순한 수다(!?)'로도 부족한 게 또 나다. 그리하여 '수다'가 가능한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다. 나는 아마도, '아무나'와 '수다'를 하지는 않는 스타일임에는 분명하다.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메모지에 필기까지 해가며 수다를 한 적도 있다. 일상의 별 일 아닌 것들을 토해내고, 그것을 다시 어떠한 '가치'와 연관시켜 나의 행동이 옳았는지를 점검해보는 수다는 어떤 면에서 일기와도 같은 느낌이다. 어떤 때엔 매우 진지한 얼굴로 지나간  옛사랑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수다를 하고 있던 당시에 만나고 있던 사람에 대한 사랑. 그리고 어떤 형태가 사랑의 이상적인 형태일까, 누구는 어떻게 사랑한다더라, 누구는 남자친구에게 무엇을 받았고, 누구는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더라, 이런 도돌이표 같은 말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수다는 생각보다 그 폭이 넓다.




역시나 가장 즐거운 수다는 어떤 '주제'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하는 수다이다. 물론 그 주제는 무거운 것부터 가벼운 것 까지, 그리고 즐거운  것부터 괴로운 것 까지, 큰  것부터 작은 것 까지 어떤 부분도 다 포함되는 것이겠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수다는 아니지만, 삶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주고받는 이야기는 결국 각자의 생각의 총합이 된다. 나는 그런 생각의 교류가 매력적인 수다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 뉴스에서 보았던 내용이 수다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드라마의 내용이나 영화의 내용, 그리고 일상에서 겪은 여러 가지 들이 모두 수다의 주제이겠다. 읽은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책과 관련한 상대의 생각을 들으며 내 사고의 빈 부분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기도 하는데, 이런 종류의 수다는 '말로 하는 독서'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K와 나눈 수다는 '수다'에 대한 수다였다. 우리가 나눈 여태의 '수다'를 녹음하면 얼마나 웃길까, 하는 생각이었다. 요즘 내가 살이 쪘는지 빠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직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와 고민,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까지 장르와 범위를 한정하지 않은 수다. 우리의 능력 안에서만 움직이는 수다. 이런 수다를 한번 기록해보면 참 재미겠다는 생각도 했다. K는 그게 무슨 쓸데없는 짓이냐고 손사래를 쳤지만 왠지 나는 손사래 치는 장면까지 모두 기록하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삶은 사소함의 총체이다. 거대한 무언가는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사소함에서 시작된다. 사랑하는 일도, 사소함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황동규 시인도 사랑하는 이를 '사소함으로 부르겠다' 하지 않았을까. 사소한 무언가 안에서 삶은 오늘도 저만치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말하는 것을 즐기지 않더라도,  말하는 것의 가치를 크게 의식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소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또 수다 떨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할 말을 다 소진하는 과정이 살아가는 일이라는 듯이.



* 장소 : 경기도 파주 헤이리마을 황인용의 뮤직스페이스 "카메라타"
* 사진, 글 : 나빌레라(navill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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