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보다 높은 가치를 향해 고개를 꼿꼿이 들어주기를.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에서 자신과 자신의 영혼을 먼저 풀어주지 않으면, 움직일수록 더욱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사회성 함량이 높지 않은 나에게도 약속이 잡히는 때가 있다.
나름 긴장하여 일찌감치 약속장소에 도착을 하고,
그 부지런으로 벌어들인 잉여시간에 카페에 들렀다.
본의 아니게 들려오는 수다소리.
한 사람은 욕망을 좇아 사는 것에 대한 당위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다른 두 사람은 격하게 공감한다.
돈을 많이 벌려면 어떤 어떤 테크트리를 거쳐야 한다는 둥,
본인 삶의 목표는 돈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라는 둥.
저마다의 기준으로 행복을 정의하고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 하지마는,
나는 왠지
젊은 청춘들의 대화가 씁쓸했다.
행복의 조건과 삶의 목표를 오롯이 물질에 할애한
저 대화의 기저에는
삶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여 갈피를 잃은 어린 자아가 있고,
열변하는 말들은 그저
'군중'이 심어둔 기준에 매몰되어 방황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청춘들은, 단 한 번도
빈한한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충만을 경험해 보지 못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저래서는 끝끝내 만족해보지 못하고 한탄을 반복하며
남 탓, 환경 탓만 해대며
보일리 만무한 행복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 것임이 뻔해 보였다.
풍파에 혼탁하여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을 때에는
무엇보다 중심을 튼튼히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연후에, 눈은 더 높은 이상과 목표를 향하고,
개똥밭이 되어버린 진창을
한걸음 한걸음 절절하게 딛으며 나아가는 것이
'살아감'이니까.
애초에 눈 질끈 감고 진창만 죽어라 휘젓는다고
가긴 어디에 가게 될 것인가. 하는 말이다.
마침 적당한 글귀가 보여
보던 책을 내려두고 조용히 속으로만 오만 오지랖을 부려보았다.
왜냐하면, 누군가 내 오지랖과 꼰데어를 듣는다면 분명,
"너나 잘하세요." 할 것이기 때문이므로...
오지랖 부린 김에,
속으로 한 차례 더 외쳐본다.
조금 더 사유와 철학이 깊어지는 젊은이들이 되기를,
'정신이 물질을 지배한다 (Mens agitat molem)'는 격언을 다시 떠올려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