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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돌고래씨 Feb 10. 2022

아홉시날린과 밥춤

아홉 시가 되면 두둠칫 두둠칫 춤을

  저녁과 밤 사이 시간을 좋아한다. 빛과 어둠의 경계를 무사히 지나 안정적인 착지를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제 남은 목적지는 침대까지이니 아늑하고 고요하고 자유로운 마음이 든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면 시침과 분침이 편안하게 누워있기까지 한 아홉 시 십오 분. 쉬지 않고 움직이는 분침이 다양한 각을 만들어내고 마지못해 따라가는 시침이 귀엽기까지 하다.


  낮과 밤의 시계는 다르게 흐른다. 저녁 아홉 시와 밤 열 시의 시간이 가장 리드미컬하게 흐른다. 오래전에는 야자가 끝나길 간절히 기다렸고 십 년 넘게 이어진 학원생활의 퇴근 시간도 그러했다. 또 다른 몇 해 동안은 야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학생과 밤을 더듬으며 공부했다. 이제는 고요한 저녁을 집에서 보내는 요일들이 많아졌는데도 문득 고개를 들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아홉 시이다. 아홉시날린이 온 것이다. 노동 세포이기도 하고 퇴근에 가까워지는 나팔소리이기도 한 것이 마구 춤춘다. 그러다 보니 퇴근을 하지 않는 아홉 시와 열시는 어쩐지 허전하다. 일단 대문을 열고 나갔다 들어오는 기분 그 자체가 필요해서 아파트 헬스장으로 나섰다.     

 

    러닝머신 앞의 티브이를 켠다. 집에서는 좀처럼 보지 않는 뉴스를 조금 보다가 옆에 선 여자의 화면으로 옮겨간다. 재야의 고수를 주제로 한 유퀴즈에서는 이 시대의 마지막 지게꾼이라며 설악산 아저씨를 소개한다. 사선으로 기울어진 지면을 두 발로 쾅쾅 내딛으며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른다. 저 어디 히말라야에만 있는지 알았던 셰르파의 재현이다. 지게꾼 아저씨는 커다란 가스통 세 개를 짊어지기도 하고 식료품인지 보급품인지 모를 상자를 키보다 높이 쌓아 올리고 산을 오른다. 설악산이 다 내 사업장이라며 자랑스레 웃는 그 모습에 마음이 가을 단풍잎처럼 노래지고 붉어졌다.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지만 1억이 넘는 돈을 기부해왔다고 한다. 독거노인들의 쌀과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빵과 간식을 사는 것에 자신의 노동을 모두 쏟아붓고 있다. 집에는 거동이 불편한 아내가 있고 84년 쥐띠인 아들은 오랫동안 시설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 아들을 위해 보내주었던 것들을 지금은 더 많은 곳으로 보내주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이번 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인 마라토너가 되고 싶다고 한다. 돈을 버는 방법들만큼이나 돈을 쓰는 방법도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꿈을 조각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여기 있구나 하며.


   그림책 [밥. 춤]은 밥이 되는 일을, 스스로 또는 누군가를 먹여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춤으로 그려낸다. 한 손엔 다리미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높이 걸린 옷을 장대로 끌어내리는 세탁소 사장님, 가볍게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 사선으로 길게 두 팔을 벌려 우아한 춤을 춘다. 전대를 찬 시장 상인은 기다란 대파를 까만 봉지의 주둥이로 밀어 넣을 참이다. 칼춤을 추는 듯 대파가 검이 되어 공기를 가른다. 토슈즈를 신은 것처럼 발끝으로 서서 거리를 차라락 착착 쓸어내는 미화원의 모습도 보인다. 양손에 초록 이태리타월을 끼고 전사 자세로 떼와 맞서 싸우는 용감무쌍한 세신사도 있다. 그들의 밥춤은 누군가의 장래희망이라고 하기엔 노동과 생계에 가깝다고 느껴질 테지만 이 책에서만큼은 무대에 오른 최고의 춤꾼들이다.    


   마흔 가까운 나이에도 돈벌이는 요령이 붙지 않는다. 붙었던 요령도 쉬이 떨어지고 좀처럼  달라붙어 있지 않다. 이만하면   같지도 않고 앞으로 이것만 잘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은 더더군다나 생기지 않는다. 그림책을 보면서 나의 밥춤을 떠올려본다. 나의 춤은 연필이고  칠판이고 의자이다. 수많은 얼굴을  학생이고 성적표이고 그들 부모의 노동이다. 누군가의 인생과 나란히 가는 .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내가 되는 일을    반복하면서 마음을 떼었다 붙이는 . 그런 생각을 하면 이런 일을 얼마나   해야 할까 싶다. 그렇게 돈과 밥이 되는 일을 생각하다 보면 한없이 짜고 비릿하다가도,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고 지붕 아래 잠들게 하는 노동의 맨얼굴과 마주하니 마음이 매끈매끈해진다. 설악산을 평지처럼 걸어가고, 누군가의 몸에서 묶은 떼를 벗겨내고, 낮고 높고 위험한 , 춥거나 더운 곳에서 밥춤을 추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늘어났던 마음이 쫀쫀하게 뭉쳐진다. 누군가의 밥이 되는 일이, 밥상이 되는 일이 반짝이고 가벼운 춤사위가 되기를, 나비 같은 춤을, 탱고 같은 춤을  함께 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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