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귀가 아프다. 생후 22개월 아들의 말문이 트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다시 감을 때까지, 정말 쉬지 않고 아는 단어와 소리를 전부 말한다. 가끔은 밤 중에도 잠꼬대를 한다. (쪼끄만한 게 자다가 갑자기 '엄마 됴아!'를 외칠 때의 기분이란.. 자다 깨서 짜증 났다가 단어의 의미를 깨닫고는 세상 행복하게 다시 잠들었다.)
아들의 말하기는 아직 어설프다. 엄마, 아빠, 맘마 같은 생존 언어는 또렷하게 발음하지만, 으자(의자), 치치포(칙칙폭폭), 하느(하늘) 등 해석이 필요한 단어도 많다. 창밖을 가리키며 말하는 '아그아' 같은 수수께끼는 아직 풀지 못했다.
아이는 날 이해시키려 노력한다. 나와 눈을 맞추면서 원하는 방향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열심히 발음한다. '응?' 하면서 못 알아듣는 엄마를 위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말해준다. 엄마와의 교감을 시도한다. 결국 내가 이해를 못 하고 '그게 뭐야?'라고 물으면 멋쩍은 듯 웃으며 품에 안긴다. 처음엔 아이의 교감 신호를 제대로 못 읽었다는 죄책감에 많이 미안했다. 하지만 아이는 지치지 않고, 엄마가 이해할 때까지 혹은 엄마가 알아듣는 단어가 튀어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말을 건다. 아이의 말하기와 엄마의 듣기 역량이 함께 훈련되면서 우리의 교감은 더욱 짙어졌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아들은 뼝아리였다. 보송보송 샛노란 깃털 뭉치가 마구 뛰어다니며 부딪히고 넘어지는 뼝아리. 가냘픈 병아리보단 아주 생기 넘치는 개구쟁이라서 뼝아리.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어쩔 줄 모르는 뼝아리를 품에 안고 보호하는 것이 엄마로서의 내 역할이었다. 혹시라도 긁히고 다칠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랬던 뼝아리가 한 달 만에 몰라보게 성장했다. 가늘고 여리던 팔다리가 길고 튼튼해졌다. 발바닥도 두툼해져서 뛰어다니기 좋아졌다. 엄마, 맘마, 까까에서 '엄마 까까 줘'로 문장을 만든다. 소파에 누워서 게임하는 엄마를 눈여겨봤다가, 다음 날 할머니한테 '엄마 께임'하고 이르기도 한다. 그야말로 환골탈태, 알록달록 깃털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앵무새로 진화했다.
생후 22개월 앵무새가 온 집안을 날아다닌다.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429개월 된 엄마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제발 다치지만 말라고 '민준아 안돼!' 외치는 내게 '안 돼요~' 대답하면서 다시 뛰어간다. 대답만 1등이다.
요 귀여운 앵무새는 또 무엇으로 진화할까? 얼마나 화려하고 강해질까? 너무 궁금하다. 세상을 바라보며 신나하는 민준이보다, 그런 민준이를 지켜보며 함께할 수 있는 내가 훨씬 더 신나고 즐겁다.
앵무새의 다음 진화를 고대한다. 크고 강해지는 앵무새 시즌 2와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나도 미리 운동하며 체력 관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