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조건 없이 시간과 돈을 들여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덕후. 바로 나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나에게는 덕후 DNA가 있다. 우리들끼리 하는 이야기 중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한번 덕질을 시작하면 쉴 수는 있지만 그만두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첫 덕질 대상은 'S.E.S.'였다. 테이프를 듣다 늘어나면 냉동실에 넣었다 다시 들었다. 일본어도 모르면서 일본어 가사를 통째로 외워 따라 불렀다. 고등학교 때까지 핑크 블러드(SM의 노래와 가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로 살면서 아이돌 음악 외에도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었다. 그런 나에게도 휴덕의 시간이 찾아왔으니 바로 대학생 때다. 대학교 진학 후 현생을 살면서 휴덕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실 세계가, 더 정확히 말하면 연애가 너무 재미있어서 덕질은 뒷전이 되었다.
그러다 20대 후반, 일도 조금 익숙해지고 연애도 쉬면서 다시 덕질에 불이 붙었다. 다시 말하지만,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 인디가수 소란을 좋아하여 각종 공연을 찾아다녔다. 3일 연속 공연을 보기 위해 홍대 근처 찜질방 수면실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페스티벌에서 1열을 차지하겠다고 길거리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공연의 마지막 순서인 가수를 보려고 한여름에 12시간 동안 서서 기다린 적도 있다. 그런 생활이 지겨워질 무렵 나의 운명, 나의 마지막 아이돌이 나타났다.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 '서로 다른 너와 내가 하나의 꿈으로 모여 함께 내일을 만들어 간다'라는 거창한 뜻을 가진 팀이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보통 투바투라고 한다. 5명의 멤버 중 최애는 수빈이다. 어쩜 모든 모습이, 모든 부분이 다 나의 취향일 수 있을까. 첫 제자와 같은 나이지만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아이. 누나라고 칭하기도 미안한 이모 팬이다.
투바투는 2019년 3월 4일에 데뷔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다. 나에게는 새로운 아이들과 함께 일 년의 첫발을 내딛는 때다. 막막하고 괴롭기도 한 이 시기가 투바투 덕분에 행복해졌다. 데뷔일에 맞춰 팬미팅이나 콘서트를 하기 때문이다. 오지 않기를 바랐던 3월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인디가수는 공연과 실물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아이돌은 아니다. 3월 공연은 그들을 실물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다. 비록 멀리서 봐야 하지만 너무 소중하고 기다려지는 날이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공연을 했던 20년과 21년을 제외하고 매년 3월 함께하고 있다.
철없어 보이는 행동일 수 있다. 이 나이에 저 어린애들을 좋아하다니. 그러나 덕질에는 순기능이 너무 많다. 한 가지 말해보면 지루할 틈 없이 시간이 간다는 점이다. 아이돌은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에 한 번 컴백한다. 한 달 전부터 조금씩 앨범 정보가 나온다. 콘셉트 포토가 뜨는 자정마다 우리 수빈이가 얼마나 예쁘게 나왔을지 기대하며 사진을 본다. 야금야금 풀리는 정보를 곱씹다 보면 한 달이 후딱 지나간다. 활동하는 2주 동안 각 음악방송의 직캠들을 반복하여 본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활동이 끝나면 콘서트를 한다. 두 달 전부터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티켓팅하고 그날만을 기다리다 공연을 본다. 비활동기에는 멤버들의 브이로그나 자체적으로 만든 예능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끊임없이 떨어지는 떡밥을 주워 먹다 보면 언제 지나간 줄도 모르게 일 년이 지나가 있다. 행복하고 설레는 순간들로 가득한 시간이다.
올해도 3월 7일부터 3일 동안 콘서트가 있다. 세 번 다 가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마지막 공연 딱 한 번만 가려고 한다. 돌아오는 화요일이 예매일이다. 과연 내 자리가 있을 것인가. 혹여 실패할까 봐 스트레스받는 날들도 있다. 그러나 티켓팅에 실패한다 해도 '나는 어떻게든 간다'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갈 거다. 아직 티켓은 없지만 공연장 왕복 셔틀버스는 이미 예약해 두었다. 부디 버스비를 환불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