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겠지만 나도 한때는 말라깽이였다. 지금은 아주 먼 과거가 되었지만 말이다.
꾸미지 않아도 예쁠 나이였지만 더 예뻐지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 아침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밤새 굳은 몸을 풀어주고 생활하면 더 많은 칼로리 소모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는 무릎 사이에 두껍고 무거운 책을 끼워두었다. 책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허벅지에 힘주다 보면 허벅지 살이 빠진다. 사랑하는 점심은 적당히 먹고, 저녁은 두유와 바나나로 해결했다. 퇴근 후 두세 시간씩 헬스장에서 땀을 뺐다. 헬스장을 가지 못하는 날에는 집에서 스쾃이라도 했다. 자기 전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현재와 비교하면 과거의 나는 자기 관리의 신이었다. 그 덕에 어떤 옷이든 사이즈 걱정 없이 있을 수 있었고, 체형만 보완하면 핏도 나쁘지 않았다. 스스로도 외형에는 만족했다.
좋은 점만 있지는 않았다. 너무 예민하고 걱정이 많았다. 나의 말 한마디에 다른 사람이 마음 상했을까 봐 밤새 걱정하고, 스스로의 부족함에 자책했다. 그뿐인가 다른 사람의 말을 신경 쓰느라 잠 못 자는 날도 많았다. 왜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까, 내가 싫은가?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정말이지 사서 걱정하며 살았다. 겉모습은 멀쩡했지만 속은 허물어져가는 낡은 집이었다.
현재를 살펴보자. 스트레칭?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나마 하던 운동도 일 년 전부터 바쁘다는 이유로 쉬고 있다. 운동을 해도 딱히 눈에 띄는 효과가 없으니 하고 싶은 생각도 안 든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시간 상관없이 일단 먹고 본다. 하루가 힘들었던 날 밤에는 맵고 짜고 단 음식을 먹는다. 저속노화가 유행인 이 시대에 고속노화의 길을 뛰고 있다. 작년에 입었던 옷이 올해는 들어가지 않는다. 뭘 입어도 태가 나지 않는다. 어울리고 안 어울리고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들어가야 한다. 점점 더 옷사이즈가, 허리둘레가 넉넉해지고 있다. 옷뿐이 아니다. 나의 마음 공간도 넉넉해지고 있다.
어떠한 일이 있으면 '이유가 있겠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아! 그렇게 말하지 말걸!' 이런 생각은 '그렇지만 그 사람을 기억 못 할 거야'라고 고쳐버린다. 살 빼느라 스트레스받느니 행복하게 먹는 돼지가 되려고 한다. 살찌면 어때. 옷 좀 크게 입지. 가끔 거울 속 내가 보기 싫기도 하지만 거울을 안 보면 된다. 예민하고 걱정 많은 말라깽이와 속 편한 뚱땡이 중에 고르라면 후자를 선택하겠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길을 걷고 있다. 물론 속 편한 말라깽이가 된다면 가장 좋겠지만 욕심부리지 않으려 한다. 난 그냥 편하게 살고 싶다. 큰 걱정 없이 소소하고 소박하게.
그래도 한번 더 말라깽이 해보고 싶다. 속편한 말라깽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