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타이밍

by 나나

6월 18일 13시. 결전의 시간이다.

일주일 전, 카톡 알람이 울렸을 때 다짐했다. 꼭 참전하여 승리하리라!

단 1분도 늦어서는 안 된다. 10초 내에 끝내야 한다.

실패한다면 수년간 티켓팅을 해 온 덕후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길 것이다.

아!!! 이럴 수가! 12시 50분 회의가 잡히고 말았다.

빠질 수 없는 회의라니! 이런 변수가 생기다니! 현생을 살아야 하는 이 상황이 분하다!


12시 40분. 평소보다 빠르게 점심 식사를 끝냈다. 10분 정도 마음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핸드폰으로는 실패할 수 있으니 식당에 노트북을 들고 갔다. 내 손에 가장 잘 익은 노트북으로.

12시 45분. 사무실로 빠르게 돌아와 미리 세팅해 두었다. 로그인을 하고,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클릭! 클릭! 클릭!

12시 50분. 회의가 시작됐다.

12시 57분. 전화받는 척 회의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돌아갔다. 지금 회의가 중요한 게 아니다.

13시. 화면이 멈췄다. 서버가 터지고 말았다. 더욱 긴장감이 돌았다. 나만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므로.

30분간 계속된 새로고침. 일도 해야 하는데 새로고침도 해야 한다. 멀티 능력 게이지를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13시 37분. 갑자기 화면이 떴다! 상황을 보아하니 서버를 뚫은 첫 번째 사람인 듯했다. 기쁨과 설렘이 가득한 마음으로 월수금 5시 40분 기초반을 누른다.

그렇게 나는 7월 지역체육센터의 적절한 시간대 수영 기초반을 등록하였다. 정말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한 시간이었다.


지역체육센터의 수영교실은 저렴한 가격과 쾌적한 시설 덕분에 피켓팅이라 불릴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오죽하면 서버가 터졌을까. 문제는 이 피켓팅에 매달 긴장하며 참여해야 한다. 한 달만 들을 수는 없다. 왜냐면 강습을 듣기 위해 기초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영복만 사면 될 줄 알았더니, 가방, 수모, 수경, 수영장용 샴푸 등등 사야 할 물건이 넘쳤다. 한 달만 하고 끝내기에는 과한 투자를 했다. 다음에는 남들이 안 하는 새벽반을 노려야 하나.


그간 여러 운동을 전전했지만 수영만큼은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일단 복장부터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운동이다. 수. 영. 복. 뚱땡이가 된 뒤로 절대 입고 싶지 않은 운동복이었다.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집 근처에 새로운 지역수영장이 생겼고, 여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름... 자고로 물과 함께 해야 하는 계절이 아닌가. 마치 유혹하듯 퇴근 후 바로 갈 수 있는 강습까지 생겼다. 운명인가.


30여 년 전 수영을 배우긴 했지만 수영장에 안 간 지 10년은 더 됐기에 기초반으로 등록했다. 매일 수영하러 가는 엄마에게 꽤나 자주 전화하여 이용법을 묻고, 필요한 물건도 추천받았다. 강습 첫날, 1시간 일찍 도착하여 자유형을 시도해 보았다. '어랏? 생각보다 잘 나가는데? 나 좀 운동에 소질 있는 듯?' 어릴 때 배운 수영과 자전거 타는 법은 평생 간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요란을 떨며 등록해 놓고 3번밖에 못 나갔다. 지난주는 통으로 쉬어야 했다. 코로나에 걸렸기 때문이다. 내가 운동하자고 남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지. 그렇게 일주일을 쉬고 오늘 4번째 수업을 다녀왔다. 다음 달에는 중급반으로 등록해야겠다. 처음부터 중급반을 할걸...


수영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깨발랄 초등학생까지. 마른 사람부터 통통한 사람까지. 물속에 있으니 몸매 따위는 생각보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다들 자기 수영하느라 다른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더운 여름날 차디찬 물속에 있으니 더위도 한결 덜 느껴진다.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는 법. 수영을 만나기에는 지금이 타이밍이었겠지. 부디 다음 달도 잘 다닐 수 있도록 피켓팅에 성공하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못난이 손꾸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