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에게는 없을 또는 잘 떠오르지 않을 기억이 나에게는 있다.
엄마의 결혼식과 동생이 태어난 날.
계획된 아이가 아닌 뜻하지 않게 생겨난 아이. 당시 군인이던 아빠와 재수생이던 엄마는 결혼할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아빠가 직장을 가지게 된 뒤 결혼식을 올렸다. 4살 때 일이다. 지금은 기억이 많이 흐려졌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조각이 있다. 부모님의 결혼식.
외삼촌은 엄마를 향해 가려 할 때마다 식장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아빠의 식장 입구에 앉아 있어야만 했다. 안에 있으면 안되는 존재. 생각해 보면 결혼식에 오는 사람들은 이미 나의 존재를 알았을 텐데. 왜 들어가면 안 됐는지 궁금하다. 아마 과거에는 결혼 전에 아이가 있는 게 지금보다 흉이었기 때문일까. 누가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 정갈하게 입고 있는 어린 내가 홀 밖 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이 남아있다. 사진을 찍은 이유가 혼자 앉아 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였을까, 기특해서였을까.
또 하나의 기억, 동생이 태어 날.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우연히 냉장고 위에서 임신테스트기를 발견했다. 엄마에게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당황해하시며 얼버무렸다. 며칠 뒤 동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대근무를 하는 아빠 대신 엄마와 함께 산부인과를 다녔다. 나를 작은 병원에서 낳은 게 속상했다고 동생은 저 멀리 큰 병원까지 다녔다. 집에서 꽤 먼 병원이었는데 버스를 탔는지, 지하철을 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커다란 병원 로비에서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던 기억만 있다.
엄마의 임신은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임산부 필수 도서들을 정독하며 적나라한 사진과 묘사들을 보고 임신을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그때 알았다. 좋았던 부분이 있다면 딸기를 먹고 싶어 하는 엄마 덕에 딸기를 많이 먹었다는 것.
한여름이 끝나가는 무렵, 밤 10시쯤 엄마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병원에 함께 가고 싶어 졸린 눈을 비비며 버티고 있자 병원에 갈 때 깨워줄 테니 자라고 했다. 그 말을 믿고 자버린 뒤 병원에 함께 가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데리러 온 아빠에게서 새벽에 아기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오랜 시간 외동아이로 자라며 힘들었기 때문에 아기의 등장은 나에게도 행복이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예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기가 기어다니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어다니는 순간, 집은 초토화가 된다. 동생 덕분에 일찍이 육아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의 젖먹이 시절부터 청년이 되는 모습을 옆에서 다 지켜보니 생명을 낳아 키운다는 게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