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
깨달음 없는 연애도 없다.
마음속에 사랑의 방이 많았던 나는 떡잎 시절부터 최애를 입주시켜 돌봤다. 최애는 저 멀리 연예인만 해당하지 않는다. 내 옆에 있는 현실 사람도 포함이다. 현실에서는 남자 친구가 최애다. 남자 친구가 안 되더라도 누군가는 '이성의 방'에 입주해 있었다.
첫 입주자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쌍둥이 오빠였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전학 올 때까지 혼자 속으로 좋아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 아이도 나를 좋아했었는데 서로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쌍둥이 동생하고만 놀뿐 그 오빠랑은 함께 놀지는 않았지만 서로 곁눈질로 쳐다보는 사이였다.
두 번째 입주자도 꽤 오래 머물렀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살다 나갔다. 가끔 전화하는 정도, 학원 가는 길 버스에서 만나면 반가워하는 정도의 연애였다.(그렇다고 나란히 앉지는 않았다. 멀리 떨어져 앉았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이기에 기숙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러고는 연락이 끊겼지만, 여전히 방에 머물고 있었다. 고3이 되던 해, 다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조기 졸업 후 대학생이 되니 연애하고 싶었나 보다. 동갑이지만 한 명은 대학생, 한 명은 고3. 원하는 대학교에 간 그 라이벌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함을 전한다.
세 번째 입주자는 한 학년 선배였다. 대학 내내 연애했기에 선배 덕을 크게 봤다. 수강 신청도 해주고, 들어야 하는 수업 조언만 해준 게 아니라 책까지 구해줬다. 외향적인 사람이었기에 내향적인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이끌어 줬다. 선배는 시험에 떨어지고 나는 붙으면서 관계가 틀어지더니 결국 헤어졌다.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선배라 그분도 너무 고맙다. 대학 시절의 추억을 남겨준 사람.
네 번째 입주자. 가장 짧고 굵게 지나갔다. 일 년 정도 만난 뒤 뒤늦게 입대했다. 그리고 첫 휴가날 차였다. 고무신이 정말 체질이었고 즐기며 보내고 있었는데 가장 이쁠 나이에 군인을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하다며 찼다. 연애할 때 서로 교환 일기와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다. 하루는 만나기 전날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 아파서 못 보는 게 너무 싫어 혼자 물수건으로 열을 내렸다. 아침이 되자마자 병원에서 링거 맞고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 사람은 아직도 그 사실을 모를 거다. 미안해할까 봐 말 안 했다. 가장 짧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섯 번째 입주자는 같은 덕후였다. 같은 가수를 좋아하면서 공연장에서 자주 보다 보니 결국 사귀게 되었다.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같이 다니는 덕후 무리도 눈치챘었다. 심지어 가수까지도. 문제는 헤어진 뒤다. 누구도 덕질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던 게 문제다. 헤어졌지만 공연장에 갈 때마다 마주쳐야 했다. 지금은 인사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연 시간을 기다리는 사이가 되었다.
여섯 번째는 아직 살고 있다. 현재 진행형이다.
이렇게 돌이켜 보면 마음속 이성의 방이 빈 적이 없다. 한 명이 나가면 한 명이 들어와 눌러앉았다. 그러나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좀 달라졌다. 다섯 번째 입주자까지만 해도 다 해주고 싶고 사랑이 가득 넘쳐 났다. 자아가 없는 수준으로 상대에게 맞추며 지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참 부질없는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하고 다른 이를 사랑해야 한다는 점을 30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이성의 방이 비어도 내 생활에 문제가 없을 만큼, 딱 그만큼만 애정을 줘야겠다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태도를 바꾼 뒤 만난 이성을 가장 오래 만나고 있다. 서로 각자의 삶을 살면서 시간이 맞으면 보는, 그렇다고 애정이 없는 건 아닌, 편안한 관계.
연애를 하면서 자신을 잃어가는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해보니까 그거 다 부질없어. 네가 너를 사랑해야 남도 너를 사랑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