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by 나나

내 견생 가장 행복했던 때를 알려줄게.


그날은 아침부터 누나가 바빴어. 온 집안에 있는 짐들을 다 챙기는 거야. 마치 이민 가는 사람처럼. 왜지? 차에 짐을 가득 싣더니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어. 도망치는 건가? 야반도주? 2시간을 달려 어느 항구에 도착했어. 쉬아가 안 마려운데 자꾸 싸래. 응아도 안 마려운데 자꾸 싸래. 쉬아 안 하면 못 간다고 하도 뭐라 해서 몇 번 싸줬어. 쉬하고 나니 이제 가방에 들어가래. 그리고 가방 뚜껑을 덮고 옷으로 가방을 감싸버렸어. 나를 깜깜한 가방 속에 넣어두다니! 화가 났지만 마침 잘 시간이라 푹 잤어.


자고 일어나니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 뭐랄까 냄시가 달라. 냄시가. 자동차 냄시, 건물 냄시가 안나고 풀 냄시, 바람 냄시가 나. 우리 새로운 곳으로 온 건가? 누나가 제주에 왔다며 신나 해. 아... 우리 제주라는 곳에 왔구나. 여행인가 싶었는데 여기서 꽤 오래 지냈어. 이곳에 있었던 9개월이 내 견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야. 왜 행복했는지 알려줄게.


일단 누나랑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어. 잠도 같이 자고, 어딜 가든, 무얼 하든 누나와 하루 종일 함께해. 반려견에게 가장 좋은 주인이 백수래. 우리 누나 백수 됐나 봐. 백수인데 어떻게 매일 밥도 사 먹고, 카페도 가는지 모르겠어.


매일 새로운 곳에 가. 풀 냄시 가득한 곳들만 다녀. 여기 오기 전에는 목에 줄을 메야만 밖에 나갈 수 있었는데 줄이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내가 자유롭게 다녀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어. 나랑 누나만 있거든. 초록초록한 산을 오르면 기분이 너무 좋아. 웃음이 절로 나와. 사실 더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데 누나 기다리느라 천천히 올라가. 저질 체력인 누나라 오는지 안 오는지 확인해 줘야 해. 가끔 소를 만나기도 해. 그럴 때는 무서워서 누나에게 안겨. 소한테 차이며 어떡해.


산에서 내려오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 근데 나는 안 줘. 채소나 과일만 자기 새끼 손톱만큼 줄 뿐이야. 진짜 못됐지. 자기만 맛있는 거 먹고!!! 항상 배가 고팠다니까. 운동은 나도 했는데 왜 이거밖에 안 주냐!!!


밥 먹고 나면 차 타고 바다로 가. 기분이 좋은 날이면 해변을 달려. 해본 적 있어? 우다다다다 달리고 나면 온몸이 다 젖어버려. 도파민 터진다니까.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곳을 뛰어서 누나에게 일부러 물 튀기기도 해. 돌 위를 걸어 다니며 바다 곤충들 관찰도 하고, 발목까지 잠기는 바다를 느끼며 한가로이 걷기도 했어. 배에 물 닿는 건 너무 싫은데, 발에 물이 찰랑찰랑하는 건 기분이 좋아. 내가 노는 동안 누나는 책 읽기도 하고 해지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기도 해. 내가 볼 땐 같은 하늘인데 누나에게는 다른가 봐. 내가 색을 잘 몰라서 그런가. 노을이 예쁜지는 모르겠는데, 누나가 좋아하니까 옆에서 기다려.


집에 들어와 발 씻고, 맘마 먹고 잠이 들어. 누나랑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거야. 원래 집에서는 따로 자. 여기는 방이 하나라 따로 잘 수 없어. 그리고 아침이 되면 누나가 열어준 문밖으로 나가 잔디밭에 모닝 쉬아하고 들어와. 패드가 아닌 풀을 향해 쉬아하는 기분! 넌 그 기분 모르지? 나 꽤 조준을 잘해.


이렇게 우리는 9개월을 그곳에서 살았어. 다녀온 지 오래 지났지만 난 아직도 잊을 수 없어. 몇 년 전에 다시 짧게 다녀온 적이 있는데 너무 행복했어.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이 있거든. 누나가 다음 달에 또 간대. 무거운 나 때문에 비행기 못 타고 배 타고 간대. 얼마나 달라졌을지, 여전히 풀냄시, 바다냄시 가득할지 너무 기대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