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일이었다. 무심코 쳐다봤던 작은 방 선틀이 파여있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쥐가 와서 갈갈갈 하고 간 모습이었다. 분명 리모델링 후 첫 입주라고 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집 리모델링하면서 어떤 물건에 긁힌 걸까? 내 집이 아니니까 상관없었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집도 같은 방, 같은 위치, 같은 모습으로 갈갈갈 되어있다. 왜지? 쥐가 나를 따라왔나? 그렇다. 우리 집에는 쥐가 있었다. 댕댕이라는 이름의 쥐가 아무도 없을 때 선틀을 갈갈갈 하고 있었다! 왜애???? 아니, 이빨도 다 자란 성인 강아지가 왜애????? 그 뒤 집에는 죽음의 공간이 생겨났다. 선틀 앞을 막기 위해 베란다에서 키우던 몬스테라 화분을 방문 옆에 두었다. 그곳은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집 안 구석이었다. 몬스테라는 웃자라기 시작했고 어느 날 말라 죽어버렸다. 아… 불쌍한 영혼이여. 그렇게 빈 화분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태안 튤립 축제를 방문하고 내려오는 길. 큰맘 먹고 구매한 작은 화분도 함께였다. 이번에는 죽이지 않으리. 꼭 꽃을 피워 나의 작은 집에 초록색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겠다고 다짐했건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역시 햇빛이 있어야 하는 걸까. 죽은 식물은 까맣게 마른 모습 그대로 몇 년을 지내고 있었다. 언제 날 잡아서 치워야지 고민만 하다가 다시 용기를 냈다. 초록색 생명을 다시 키워보는 거야!!!
동네 꽃집에 들러 햇빛 없이도 자랄 수 있는 꽃이 있는지 물었더니 그런 꽃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햇빛 없이도 자랄 수 있는 식물을 물으니 몇 가지 추천해 주셨다. 가장 초록초록한 에너지가 강한 녀석으로 골라 왔다. 꽃집을 둘러보고 있으니, 사장님께서 지금이 아니면 만날 수 없다며 프리지어를 추천하셨다. 한정판에 약한 나는 프리지어 한 단도 구매했다. 화병이 없어 텀블러에 꽂아두었다. 오래오래 보라고 꽃이 전혀 피지 않은 녀석으로 주셔서 꽃잎 구경을 아직 못 했다. 내가 꽃을 산 게 맞나? 텀블러가 넘어져서 책과 컴퓨터가 젖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만 든다. 꽃이 피면 기분이 좋아지려나?
남쪽에는 이번 주말 홍매화가 만개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정이 있어 보러 가지 못한다. 다음 주면 다 지고 없으려나. 한정판에 약한 나는 그 계절, 그 시기에만 볼 수 있는 꽃을 좋아한다. 꽃집에서 사 오는 꽃다발보다 뿌리가 땅에 박혀있는 꽃을 더 좋아한다.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는 건 봄이 오고 있다는 소리. 매화로 시작해 곧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가 피고, 벚꽃도 피겠지. 겨우내 꽃놀이하러 못 가서 아쉬웠는데 2026년의 꽃들을 보러 다닐 생각에 설렌다. 올해는 또 얼마나 많은 꽃을 내 사랑둥이와 볼 수 있을까! 홍매화 보러 가야 하는데 못 간다고 우는소리를 하니 친구가 "너 작년에도 봤고, 재작년에도 봤잖아! 매년 봤잖아!"라고 했다. 나는 답했다.
"그건 2026년도의 홍매화가 아니잖아! 같은 꽃이 아니야! 지금이 아니면 올해 홍매화는 못 봐. 내년까지 기다려야 해. 꽃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