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인 당신을 위한 넷플릭스 안내서
<오렌지 이스 더 뉴 블랙>은 대표적인 페미니즘 미드다. 중산층의 백인 뉴요커인 파이퍼는 기억도 나지 않는 십여 년 전 사건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사실 이 드라마는 여성해방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담지는 않았다. 그저 너무나 다양하고 이해가 충돌하며 존나 세고 또는 존나 약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페미니즘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남성은 다양하게 묘사되어왔다. 남성은 뚱뚱해도 늙어도, 못생겨도 또는 잘생겨도 어려도 남성일 수 있었다. 그러나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여성의 모습은 날씬하고 예쁘고 젊은 틀에 박힌 모습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성은 예쁘고 젊어야 한다고, 젊고 예쁜 여성만이 여성이라는 메시지를 전파한다. <오뉴블>은 늙고 뚱뚱하고 마르고 작고 볼품없는 여성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또 하나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 미국 사회의 문제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듯한 시즌별 주제다. 드라마의 첫 시즌은 원작에 집중하는 듯하지만, 이내 감옥 내 인종 갈등(흑인에 대한 차별과 백인우월주의 백래쉬), 신자유주의에 의한 긴축재정 등을 주제로 보며 오늘날 미국 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여성에게 허락된 배역은 여비서밖에 없던 시절, 어떻게든 좋은 연기를 하겠다고 전전하는 주인공은 연기와 완전히 다른 레슬링을 시작하게 된다. 드라마는 여성에게 제대로 된 배역이 주어지지 않는 1970년대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다룬다. 홀로 낙태를 하게 되는 이야기, 아이를 낳고 일을 하고자 하지만 이중의 부담을 수행해야 하는 이야기, 레이건이 집권하며 신자유주의가 시작되자 복지 혐오를 맞닥뜨리는 흑인 여성 등. 여성의 삶이 곧 젠더화 된 삶임을 알 수 있다.
두 노인 여성의 우정 이야기이다. 알고 보니 서로의 남편이 게이이고 또한 그들이 결혼한다는 청천벽력에 덩그러니 남게 된 두 사람. 전형적인 비즈니스 커리어 우먼에 노인이 되어서도 식단 조절을 하며 '여성스러움'을 추구하는 그레이스와 달리, 프랭키는 1960년대 히피 출신으로 진보적인 미술가이자 페미니스트이다. 다르기도 참 많이 다른 두 사람은 우연히 함께 살아가며 서로의 마음에 공감하고 좋은 가족이자 친구로서 서로의 삶의 일부가 되어간다.
참 두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은 딜도다. 일반 딜도는 노인이 쓰기에 무겁다는 것을 알게 된 그레이스는 특유의 비즈니스 능력을 발휘하여 프랭키와 함께 딜도 사업을 시작한다. 노인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긍정이 포인트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그레이스 역의 주인공 제인 폰다는 여전히 열렬히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다. 젊은 시절 베트남전 반대 운동 등을 했던 그는 지금도 여성의 권리를 위해 열심히 살아간다.
아직 섹스를 못해본 트레이시는 어떻게 하면 멋진 첫 경험을 해볼까 궁리한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즐거운 긍정이다. 생리대 대신 탐폰을 시도해보는 트레이시가 유쾌하게 그려지고 근본주의 크리스천인 트레이시의 언니는 처음으로 자위와 섹스를 시도해본다. 섹스는 한번도 안해봤는데 질염은 꽤 걸린다는 트레이시.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섹슈얼리티를 전유하게 되는 여성들을 자연스럽게 그려냄으로서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낸다. 또한 너무나 늘 밝고 귀여운 트레이시의 캐릭터가 정말 사랑스럽다. 심각한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으면서 마음 편하게 시트콤을 보고 싶을 때, <추잉검>을 추천한다.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dear white people)>
아이비리그 캠퍼스 내에서 이루어지는 인종차별(racism)을 고발하는 샘과 흑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실 이 드라마는 페미니즘보다는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흑인들의 운동에 더 가깝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선정한 이유는 흑인 여성이자 흑인운동의 리더인 샘을 주체적으로 잘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의 장점은 2가지다. 첫 번째로, 흑인 운동의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흑인 운동을 담았기에 백인은 나쁘게, 흑인 운동가들을 정의롭게만 그렸다면 오산이다. 인종차별에 대항하여 급진적인 운동을 하고자 하는 흑인부터 보수적인 흑인들까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담았다. 특히 그들을 정의로운 모습으로만 묘사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존나 센 운동가이지만 감정표현이 서투른 샘, 흑인운동에 열정적이지만 허세기가 있는 레지, 겉보기에 찌질 해 보이지만 실은 언론인으로서의 열정이 있는 라이어널 등등. 찌질하고 정의롭지만 지금 오늘의 정의를 추구해가는 모습이 현실의 운동과 닮아 있다.
두 번째 장점은 흑인 인권 운동과 동시에 겹쳐져서 발생하는 등장인물들의 사적인 사건들이다. 운동이 고조될수록 연애관계에서 감정표현이 서툴러 상처 주고 마음은 이 일에 있으면서 집회에 나가는 주인공들의 심리가 엉켜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운동가 또한 사적인 개인임을 잘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