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인 May 19. 2018

미드vs한드 젠더 장면 비교: <임신중절>

임신과 임신중절에 대한 비난이 여성에게만 향하는 사회, 남성은 어디있는가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임신중절권이 갖춰진 미국 사회(주마다 제각기 다르다. 보통 임신 초기의 임신중절이 합법이고 먹는 임신 중절약(유산 유도제)가 합법이다)와 그렇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임신중절에 대해 다루는 장면을 비교해보았다. 필자가 선정한 미드의 임신중절 장면들은 임신의 책임과 임신중절에 대한 비난이 여성에게만 향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잘 그렸다. 함께 임신한 남성이 등장하지 않는 모습은 임신과 임신중절의 책임이 남성에게는 향하지 않는 오늘날의 사회가 잘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낙태 금지법'이 한국 남성의 협박용으로 오용되는 한국 현실을 상기시키며 한국 드라마의 임신중절 장면을 비교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레이스> : 임신중절권이 갖춰져 있지 않은 사회와 소리없는 죽음

  주인공 그레이스의 친구 메리는 뜻밖의 임신을 하게 된다. 부잣집 도련님은 곧 결혼을 하겠다며 메리를 유혹했고 이내 메리는 임신했지만, 모든 책임은 메리에게 돌아간다. 1800년대 배경의 캐나다. 임신중절 권리는 커녕, 안전한 수술방법도 없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혼자 사생아를 낳아 키울 수 없었던 메리는 위험하지만 임신중절 수술을 선택한다. 수술을 받고 돌아온 후에도 수술을 숨겨야 하므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한다. 친구 그레이스만이 유일하게 메리를 돌보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다음날, 메리는 엄청난 양의 하혈을 한 채 눈도 감지 못하고 죽는다. 친한 친구의 죽음은 그레이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이 된다. 하지만 메리의 죽음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져야 했다. 메리와 그레이스가 하녀로 일했던 주인집은 '못되고 수치스러운' 일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조심을 시키고 그렇게 구조적 죽음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합법적인 임신중절 권리와 의료안전이 갖춰져 있지 않은 사회, 그리고 임신과 임신중절에 대한 책임과 비난이 여성에게 쏟아지는 사회에서 여성이 죽게되고 그 죽음마저도 은폐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글로우> : 임신과 임신중절의 과정을 혼자 겪어야 하는 여성의 씁쓸함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미국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임신을 했음을 알게 된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상황도, 마음도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그녀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낙태밖에 없다.

  드라마는 임신의 책임과 비난을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만 가하는 사회에서 임신과 임신중절을 혼자 견뎌내야하는 여성의 씁쓸함을 잘 그려낸다. 임신을 알게 되고 혼자 전전긍긍하다 병원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함께 임신한 남성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의 씁쓸하고 낙담한 표정에 우리의 마음도 함께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임신중절은 생명에 대한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담론에는 함께 임신한 남성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는다. '낙태는 살인'이라고 주장하지만, 함께 임신한 남성에 대한 언급 없이 여성에게만 책임과 비난을 쏟아버리는 사회, 그곳이 아직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다.


<친애하는 백인여러분> :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 그것을 선택하는 게 쉽다는 의미는 아니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을 쉽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야

  아이비리그 명문대학을 다니는 여대생 코코가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임신중절이 합법이 되었고, 더불어 집에서 간단하게 임신중절을 할 수 있는 약까지 구비되어 있는 2018년 미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코에게 임신중절은 쉽지 않다.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을 쉽게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야

  코코는 전 남자친구인 트로이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함께 이 일을 견뎌내고자 찾아가지만, 코코를 맞는 것은 트로이의 한심한 모습일 뿐이다. 결국 코코는 혼자 임신을 감당하기로 결심한다. 임신중절을 차일피일 미루며 현실을 부정하던 코코는 친구들과 회의를 하던 중 입덧으로 구토를 하고 결국 임신중절을 결심한다. 이 때 산부인과에 함께 찾아간 사람은 트로이가 아니라 그녀의 룸메이트다. 간호사가 코코의 이름을 부르는 그 때, 코코는 잠시라도 이 병원을 벗어나 아이를 낳아 키울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이내 진료실로 걸음을 옮긴다. 임신중절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그나마 선택권이 보장된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함께 임신과 임신중절의 책임을 견뎌내는 남성은 없다. 덧붙여 임신중절에 대한 선택권이 보장된 사회에서도 임신중절을 선택하기 어려운, 여성의 내적 갈등을 잘 보여주었다.

낙태 방법을 검색해보는 코코. 뭐든 쉽지 않다.



한드 <황금빛 내인생> : "신고한다, 그거 불법인 거 알지?"

"신고한다, 그거 불법인 거 알지"

극중 서지태(이태성 분)는 이수아(박주희 분)가 임신중절 수술을 받으려는 병원에 찾아와 "신고한다, 그거 불법인 거 알지"라고 말한다. 실제로 임신중절이 불법인 한국사회에서 2000년대 이후 임신중절이 처벌받은 것은 모두 파트너 남성이 여성을 협박하다 신고한 것이었다. 이렇게 '낙태죄'가 악용됨에도 불구하고 그 악용을 그대로 전시하였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이 장면이 주인공 남성의 책임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여주인공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임신중절을 선택하는 모멸차고 야심있는 여성으로, 그에 반해 남성 주인공은 그 아이를 낳아 키우려는 가정적이고 책임감있는 남성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 장면을 수단화한 것이다. '낙태죄'를 협박용으로 악용하고, 그 장면을 남성 주인공의 책임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드라마가 방영되는 사회, 지금은 2018년 한국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렇게 가해자가 된다: 남성들의 성정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