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존엄한 자가 성매매를 통과해야 했던 기록
인간됨을 지키는 일은 때때로 무엇을 수용할지에 대한 경계를 세우는 일을 필요로 한다.
나는 이 책을 '성매매에 대한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이 책을 어느 존엄한 인간이 빈곤과 젠더가 교차한 삶의 막다락에서 성매매에 유입되었고 끝내 빠져나와 자신의 경험을 해석해낸 기록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러한 맥락을 드러내야만, 성매매'된' 고통, 저자가 이를 다시 기억하며 글로 쓰고 해석해낸 수고로움을 담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성매매 페미니스트 활동가 레이첼 모렌은 15세부터 7년 동안 성매매'됨'을 겪었다. 이 책은 3단계로 구성되는데, 성매매에 유입될 수밖에 없었던 과정, 성매매의 폭력성, 성매매 이후의 삶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 말했든 저자는 빈곤과 젠더가 교차한 삶의 막다락에서 성매매될 수밖에 없었다. 가난했던 가정, 떠밀리듯 집에서 나와 노숙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리고 남성 노숙자가 아니라 여성 노숙자였기에 결국 성매매에 유입되었던 맥락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성매매 '하다'라는 능동태가 아니라 성매매'되다'라는 수동태를 늘 사용한다. 우리 사회는 성매매 여성을 '자발/강제'이라는 이분법적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성매매 여성의 생애사에서 성매매는 빈곤과 젠더가 교차하는 지점에 마지막 남은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자발이 아니라 강제된 것임을 증명하며 이분법을 해체한다.
저자는 자신이, 그리고 성매매 여성들이 성매매에 떠밀리는 맥락을 보여주기 위해 어린 시절, 자신이 처했던 빈곤한 가정환경을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은 동정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글의 곳곳에서 어느 존엄한 인간의 흔적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특히 동정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 그 문장에서 나는 어느 존엄한 인간의 단호함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존엄한 인간이 겪었던 고통은 성매매 여성에 대한 대상화와 편견(사치스러운 창녀, 자유로운 성노동자, 불쌍한 피해자)에 가려 은폐되었다.
성매매 여성이 실제로 하는 일이란 자신의 몸이 성적으로 학대되도록 돈을 받고 허락하는 것이다. 성학대와 관련된 모든 부정적인 느낌들을 겪지만, 본인이 수용했기에 사실상 스스로에게 재갈을 물리고야 말았다. 말 그대로 표현할 권리를 팔았다.
성매매는 돈을 받고 성학대를 겪는 것과 다름없지만, 스스로 수용한 것이기에 그 고통을 표현할 수 없다. 성매매에 대한 혐오와 대상화, 편견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성매매 여성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발화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몸이 침해되었던 감각과 슬픔, 고통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성매매의 폭력성을 증언했다. 그리고 성매매와 관련된 편견에 반박하며 성매매의 존재 자체가 모든 여성에 대한 폭력임을 증명했다.
성매매의 존재는 비성매매 여성까지 잠재적 성매매 집단으로 간주한다. "여자는 돈 쉽게 벌 수 있지 않냐"는 멸시가 그 증거다.
경험과 언어가 있기에 가능한 증명이었다.
나는 정치적 올바름이란, ①폭력이라 생각되지 않는 것을 폭력이라고 인지할 수 있는 감각 ②기꺼이 피해 당사자와 연대할 수 있는 실천이 어우러질 때, 정치적 올바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더욱 정교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