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아주 쌩초보인데 단기간에(예를 들어, 몇 주, 몇 달 만에?)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방법은..
아쉽게도(?!)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보며(읽으며) 듣기를 꾸준히 하고, 필수적인 문법도 외워서
언어 실력의 뼈대가 어느 정도 갖춰진 상태라면,
그나마 좀 빨리 늘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제가 영어, 아랍어 통번역대학원 교수님들의 강의를 모두 들어 봤는데,
(물론 교수님들 대부분은 현직 통번역사이기도 하십니다)
통대에 다니는 학생들 중 방학 때 갑자기 실력이 확 늘어서 왔다거나..
이렇게 짧은 시간에 실력이 확 는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한 게 있다는 겁니다.
바로 '문단 외우기'.
단어도, 문장도 아니고, 문단 말입니다.
영어과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기 중엔 그냥 평범했는데, 방학이 지나니까 유창성이나 어휘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학생이 있는 거예요.
그 학생한테 방학 때 뭘 하고 온 거냐? 어학연수라도 다녀왔냐? 라고 물으니
그냥 뉴스 기사를 정해서 하루에 한두 문단씩 외웠다는 겁니다."
나중에 통대에서 뵌 아랍어과 교수님은,
아예 연설문을 통으로 달달 외우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자다가 깨워서 툭 쳐도 촤르르르 나올 정도로 달달 외워야 한다'며
시간을 정해 놓고.. 예를 들면 3분 30초?(이 시간을 10초라도 늘리기 위해 항상 교수님과 협상을 했었죠..)
교수님 앞에서 그 시간 안에 빽빽한 A4 한 바닥짜리 연설문을 달달달달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죠.
(틀리는 횟수가 3회 이상이면 그날 말고 다음에 다시 도전해야 했습니다...ㅠ)
그 제한 시간 안에 연설문을 다 읊으려면
평소 말이 정말 정말 빠른 편인 저도
의식적으로 말을 더 빨리 해야 할 정도였어요.
(처음엔 보고 읽어도 제한 시간 안에 다 못 읽은 동기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이걸 이렇게까지 달달 외워서 뭐 하나? 이 연설문과 똑같은 상황이 오지도 않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특히 A-B(A:외국어, B:모국어, 한아통역(한국어에서 아랍어로)을 의미) 통역을 할 때면 그때 외운 문장들이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들은 걸 기억해서, 그것도 외국어로 빠르게 뱉어내야 하는 중압감 속에서
머릿속에 콕! 박혀서 기계적으로 줄줄 나오는 문장들이 아주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일단 그렇게 외워 놓고 나니,
그 연설문들의 인사말은 아주 자연스럽고 유창하게 줄줄줄 나왔고(여러 개를 외웠으니 상황에 맞게 골라 쓸 수도 있었구요),
다른 문장들도 단어를 바꾼다든지..
구조를 살짝살짝 바꿔서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있더군요.
그때 알았습니다.
단어만 외우지 않고 문장, 더 나아가 문단을 외워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덩어리로 외워야 말을 할 때 써먹기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죠.
즉, 통역에서 말하는 Fluency를 위해 문단을 외워야 하는 겁니다.
좋은 글의 탄탄한 전개나 논리를 그대로 외울 수 있는 건 덤이구요!
(물론 시험 점수만을 위한 공부를 단기간에 하는 경우라면 문단까지 외울 필요는 없겠지만요.
하지만 이때도 '단어'만 외우기보단 맥락이나 문법 쓰임새 파악을 위해 '문장' 또는 최소한 '어구' 정도는 외워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을 외울지는 외국어를 배우는 목적에 따라 달라지겠죠.
하지만 그 목적에 맞는 양질의 텍스트를 골라서(통대에선 보통은 공신력 있는 미디어의 텍스트를 선호합니다)
날마다 한 문단씩이라도 외운다면,
나의 외국어 실력도 그만큼 조금씩 쌓여서
무서운(?!) 변화가 느껴지실 겁니다.
처음엔 한 문단 외우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릴 거예요.
하지만 이것도 계속 하다 보면 한 문단 정도는 금방 외울 수 있는 시기가 옵니다.
외국어가 왜 빨리 안 늘지? 하시는 분들,
외국어 빨리 잘하고 싶다! 하시는 분들,
매일은 아니더라도 최소 일주일에 몇 회는
텍스트를 한 문단씩 외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