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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 얼굴

아이들을 기다리는 나 vs 실제 아이들과 있을 때의 나

by 나얀


얼마 전부터 둘째도 등원을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기관에 보내고 나면, 집이 한없이 조용해진다.

처음엔 ‘드디어 나만의 시간이다!’ 싶어서 신나지만, 뭔가 좀 허전하다.

일단 끝없는 자유를 만끽해야지! 하는 바람과 다르게, 아직 집 밖으로 나간 적이 거의 없다(쓰레기 버릴 때 빼고..ㅠ)


아이들이 없으니 밖에 안 나가게 된다. 그만큼 아이들의 빈자리도 크게 느껴진다.

‘이제 좀 조용히 쉬어보자’고 바랐던 게 무색하게, 대충 집안 청소를 마치고 나면 텅 빈 공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갑자기 선생님이 올려주실 알림장이 기다려지면서,

아이들은 지금쯤 놀고 있겠지. 오늘은 뭘 하려나? 낮잠은 잘 자고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돌아오는 순간, 내 마음은 또 달라진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엄마아아아!!” 하며 달려드는 아이들.

반갑지만 순간 몸이 긴장한다. 전속력으로 뛰어오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받아줘야 하니.

온 집안이 다시 시끌벅적해지고, 여기저기 달라붙는 아이들 덕에 내가 하고 있던 일은 중단된다(뭘 하고 있었든 간에).


“엄마 화장실 불 좀 켜 줘!”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엄마 같이 블록놀이 하자~”


사랑스러운데, 동시에 좀 벅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이 보고 싶었는데, 막상 함께 있으니 또 피곤해진다.

‘이제 내 시간은 또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고, 어느새 한숨이 새어 나온다.


나는 도대체 어떤 엄마일까?

보고 싶다가도 힘들어하고, 함께 있고 싶다가도 혼자 있고 싶고…

나는 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항상 듣는 말.

“아이는 금방 크고,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 지금을 즐겨야 해.“

정말 그럴까?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이 소중한 건 맞다. 물론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도 맞다.

하지만 늘 즐겁기만 할 수는 없다. 부모도 사람이니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육아의 고단함(+심신의 피로)은 당연히 공존할 수 있다.


사회에서 기대하는 ‘좋은 부모’는 헌신적이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무조건) 행복해하는 존재다.


하지만 현실의 부모는 다르다.

우리는 감정이 있고, 지칠 수도 있고,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 모든 감정은 ‘나‘라는 ’개인‘이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이기도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힘들어도 보고 싶은 건, 아이가 그만큼 내 삶에서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함께 있고 싶다가도 벅찬 건, 나도 하나의 ‘개인’이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두 얼굴’은 이기적이거나 모순된 게 아니라,

부모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감정의 균형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두 얼굴이 있기에, 내가 더 사랑하고, 더 지치지만, 결국 더 성장하는 게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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