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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되지 않아도 그냥 꾸준히

아하! 패터슨은 시인, 그럼 나는 지은이?

by 위기회

영화 <패터슨>을 보았는데 도시 패터슨에서 패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버스 운전사의 일주일을 보여준다. 늘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안에 여러 변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버스 승객들의 이야기가 달라지고, 우연히 세탁소에 갔다가 랩을 연습하는 사람을 마주친다. 큰 사건 없이 평일의 반복되는 일상이 꼭 나의 하루 같다.


나도 출근 전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전날 일기를 쓰고, 책도 조금 읽고 싶지만 늘 아침잠을 이기지 못하고 알람을 몇 번 끄다가 일어난다. 씻고 꽁꽁 싸매 롱패딩을 입고 버스를 타러 간다. 버스에서 간밤에 재미난 것들을 보다가 회사에 도착한다. 이제 출근했으니 메일을 확인하고, 업무를 쳐내고, 틈틈이 사내 메신저로 회사를 욕하고, 점심 메뉴를 고민한다. “오늘 뭐 먹지~”


어렸을 때 공부는 엉덩이 힘으로 하는 거라는데 직장생활도 똑같다. 파티션에 몸을 숨기고(사실 파티션이 없는 회사다. 충격적) 엉덩이 힘으로 버티다가 여섯 시 땡! 드디어 퇴근이다. 불현듯 해가 갈수록 엉덩이만 커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맞을지도)


약속 없는 날에는 퇴근하고는 집밥을 챙겨 먹고,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요새 뭐 볼 거 없나 찾는다. 영상을 좀 보다가 운동을 갈지 말지 100번쯤 고민한다. 101번째 큰 결심으로 운동을 가거나, 여러 핑계를 대며 누워서 편하게 쉰다. 이럴 땐 꼭 J가 아니고 P인 거 같다. 아니면 그저 게으른 사람? (날이 추워서 자꾸 운동 갈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다 어느새 시곗바늘은 열한 시를 넘기고 이제 또 내일은 한 시간 일찍 일어나서 아침 명상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잠에 든다. (오늘은 30분 일찍 일어나서 스텝퍼를 20분 타고, 스텝퍼를 타며 책도 읽었다! 웬일이니)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패터슨은 똑같은 일상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시로 적는다. 패터슨에게 시는 시를 적는 그 자체로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 패터슨은 시인이 되겠다는 엄청난 열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고 시 쓰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다. 그저 작은 노트에 일상의 순간을 시로 채워나가는 패터슨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김혜리 영화 평론가의 평일의 예술에 관한 이야기라는 말에 공감한다. 같은 일상을 사는 것 같지만 패터슨은 좋아하는 시를 쓰는 일을 꾸준히 하며 자신만의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 간다. 무언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며 시를 쓰는 패터슨을 본 우리들에게 패터슨은 시인이다.


패터슨의 시처럼 요즘 나에겐 글쓰기가 일상에 영감을 준다. 저번주와 이번주 회사에서 나의 모습은 똑같고 아마 한 달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일이 아니다 보니 업무에 성취를 느끼기 어렵다. 몸은 편하지만 회사에서 소모품처럼 여겨지고, 내 시간을 돈으로 바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일에 의미가 없다고 불평했다.


어떻게 이렇게 평생 회사에 다니지...?
진짜 진짜 노잼!!



현실 도피를 위해 해외여행을 가려고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거나, 분위기 좋은 와인바에 다니며 근사한 사람인 양 굴었다. 이렇게 지내면 그때 순간은 재밌는데 월급-(비행기 티켓+여행경비+친구들과 약속)=0원으로 늘 월급은 나를 스쳐갔다. 추억은 남았지만 모아둔 돈은 별로 없고, 여행에 다녀오면 마치 꿈인 것처럼 내 일상은 늘 그대로였다. 회사에 가는 평일 일상을 지겨워하며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부재했던 거 같다.




그랬던 내가, 퇴근하고 친구랑 노는 걸 좋아해서 일주일에 7번 약속을 잡기도 했던 내가, 글을 쓰며 혼자 노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 글 쓰기의 장점은 자아성찰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천한 글이지만 누군가 좋아요를 눌러주고 조회수가 올라가면 은근히 도파민이 충전된다. 앞으로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는 동기부여도 생긴다. 너무 평범해서 일기장에 남을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라도 적으며 (사실 다른 이야길 쓸 게 없다) 함께 공감하고 영감을 주고받고 싶다.


커뮤니티 모임에서 나를 소개하는 글을 적을 때 '직장인'은 영 재미가 없었다. 개발자나 디자이너처럼 직무가 명확하면 그렇게 소개할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사무직? 어떡해 더 구리다. 일로 만난 사이에는 명함을 건네면 그 명함이 나를 대표하고 다른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상대방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일이 아니라 영화나 책 모임으로 만난 사람들에겐 나를 좀 다르게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수식하는 다양한 것들이 많아지면 좋겠는 바람이다. (고민 끝에 '글 짓는 직장인'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나로서는 직장인, 브런치 작가, 개인 블로그 운영, 커뮤니티 모임장 활동, 주말에 카페 알바생이다. 여기에 더 붙이고 싶은 수식어는 뭐가 있을까? 그것들을 고민하고, 고민과 도전의 여정을 글로 지으며, 브런치에 켜켜이 나의 기록을 쌓아갈 생각이다.



무려 수목금 3일 동안 매일 브런치 글을 연재하고 있다.

대단해! 킵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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