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숨에 건강을, 날숨에 재력을
박상영 소설가의 연작소설 <대도시의 사랑법> 책을 재미있게 읽고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도 보았다. 소설은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도시를 배경으로 블랙 코미디 같은 사랑 이야기이다.
김하나 작가는 추천사에서 '어떤 사랑은 있는 동안 권태인 줄만 알았다, 있다가도 없는 것, 없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도착하는 것'이라 말했는데 나의 지난했던 연애도 떠오른다. 어떤 사랑은 헤어지고 나서야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노래가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대한민국 서울, 대도시에 살고 있는 30대 직장인으로서 나의 삶을 살아내는 동안 권태로움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나에게 권태로운 일상은 무기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입버릇처럼 시간이 너무 빠르다고 말하는데 그럼 이 아까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의미 있을지 생각한다. 삶의 의미, 직업의 의미, 일의 의미 모두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의미가 생긴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동안 의미를 찾으려고 했는데 의미는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라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추 시인의 시구절이 떠오른다. 그럼 나는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가.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다.
대도시의 살며 내가 바라는 모습은 사랑도 하고, 일 년에 두세 번은 해외여행도 다니고, 커뮤니티 시설이 잘 되어있는 아파트에도 살고 싶다. 적고 보니 대한민국 중산층으로 살고 싶다는 것이려나? (긁적) 뭔가 꿈이 세속적인 것 같아 민망한 기분이 들면서도 자본주의에서 무언가 경험하고 즐기기 위해서 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니까. 여유롭게 즐기면서 인생의 다양한 맛을 느끼고 싶은 걸.
새해 인사를 전하며 들숨에 건강을, 날숨에 재력을 얻으라는 마을 건넸다. 건강과 재력이 있으면 인생 살기가 훨씬 수월한 거 같다. 대도시에 살기 위해서는 지하철의 긴 환승 통로에도 지치지 않고 출퇴근하는 체력이 필요하다. 또, 과시가 아닌 나를 위해 소비할 수 있는 재력도 갖춰야 한다. 재력을 모으고자 영하 12도의 날씨에도 더 누워있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이불 밖을 나와 출근한다.
친구들과 만나서 걷기 앱테크를 서로 추천했다. 1만 보 걸으면서 200원을 모을 수 있는 손목닥터 9988+ 추천한다. 건강과 티끌 같은 돈을 동시에 모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친구들과의의 수다에도 각자 대도시에 사는 법이 여실히 드러난다. 어제는 나까지 넷이서 만났는데 여러 명이라 더 다양하게 먹을 수 있음에 설레하며 양꼬치 4인분, 꿔바로우, 토마토계란볶음을 폭파시켰다.(이가네 양꼬치 체인점인데 맛있어요) 배 터지겠다고 말하며 당찬(무거워진) 발걸음으로 투썸에 가서 아이스박스와 스초생 케이크도 시켰다.
케이크를 퍼먹으며 아이라니 하게도 다이어트 정보(스위치온 다이어트가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임)를 나누고 30대가 되었으니 챙겨 먹어야 한다는 영양제 정보를 공유했다. 우리는 다이어트와 건강 정보를 나누면서 늘 과식하는 게 문제지만, 오늘도 건강 상식이 늘었다.
한창 먹다가(수다 떨다가, 입은 하난데 동시에 가능하다니! 멋진 우리들의 수다력!) 어김없이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말도 잊지 않는다. 서울 집값이 너무 올랐다느니, 미국주식 뭘 사서 얼마를 벌었다느니. 이제 돈 빼고 살 넣기 그만하고, 살 빼고 돈 모으자며 의기투합한다.
대도시를 살아가는 나와 친구들의 대화는 이렇게 답답한 세상에서도(요즘 시국은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불러일으키지만) 발랄함을 잃지 않고 잘 살아가기 위한 고군분투이다. 절절한 사랑과 안정적인 삶, 나를 위한 소비와 나를 지키는 통장 잔고, 맛집 가기와 살 빼기. 모순 가득한 삶이지만 그 삶을 살아내는 우리는 우리의 삶에, 이 순간에 진심이다.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것들이 대도시의 (나를 위한) 사랑법이다. 나는 나를 더 사랑하고 아껴줘야지.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도 익숙함에 속아 자꾸 잊어버린다. 올해는 내가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싶다.
나를 아끼며 건강한 것들을 챙겨먹고 조금 덜 먹자! 새해 결심은 이렇게 또 다이어트다. 허허.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