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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고백의 불시착

호감 표현하면 되는 줄 알았지

by 위기회

연락해 볼까? 아 부담스러우려나? 다음에 만나서 먼저 친해진 뒤에 자연스럽게 연락해 볼까? 아 근데 다음 모임은 한 달 뒤라 너무 멀었는데


와인 모임에 다녀온 뒤에 이 생각의 굴레에 빠졌다. 가볍게 연락해 보지 뭐~ 싶다가도 상대방이 부담스러울까 봐 조심스럽다. 괜히 연락했다가 어색해지면 어떡하지?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좀 웃기다. 이렇게 관심 있는 이성에게 연락할지 고민하는 것도 얼마 만이야.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일요일에 집에서 쉬지 말고 친구 만날 걸 그랬다. 괜히 심심하니까 더 연락할지 고민이다.


너무너무너무너무 마음에 들고 내 스타일인가?

그 정돈 아님


근데 이대로 연락 안 하고 끝나도 괜찮아?

그건 좀 아쉬움


상대방이 먼저 연락할 거 같아?

아니 전혀


연락했다가 까이면 어떨 거 같아?

어쩔 수 없지. 별로 큰 타격은 없을 듯?


마음의 핑퐁놀이를 하다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그냥 먼저 연락해 보자. 이렇게 혼자 고민만 할 바에야 카톡 해 보면 뭐라도 알겠지. 갑자기 파워 당당 쿨한 여성으로 빙의해서 카톡을 적었다.


안녕하세요, 와인 모임에서 만난 위모양입니다.

갑자기 연락드려서 놀라셨죠?

모임 끝나고도 A님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혹시 부담스러우시면 편하게 말씀 주세요!

저는 정말 정말 괜찮습니다!!!!


카톡을 보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재밌어... 이런 감정 놀음에 빠진 내가 웃기고 재밌어.. 막상 보내니 별 것도 아니고만? 카톡을 보내자 오히려 마음이 후련했다.


이제 사랑의 화살을 쏘았으니 내가 할 일은 없다. 상대방의 답변이 뭐라고 올지 기다릴 뿐. 카톡 보내 놓고 괜히 신나서 밀린 집안일도 하고 빨래도 돌렸다. 답장이 뭐라고 오려나 두근




그런데 카톡을 보낸 지 5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1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렇게 카톡 확인을 늦게 한다고????


햇살이 가득 들었던 집 거실도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둑해진다. 뭐 주말이니까 약속 있으신가 보다~ 하고 애써 태연한 척하며 괜히 핸드폰을 뒤집어두고 책으로 눈을 돌렸다.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또 두 시간이 흘러 카톡을 보낸 지 7시간 만에 답장이 왔다.


아 안녕하세요, 모양님 연락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그냥 대화하는 건데요~!


오 카톡이 왔는데... 오 근데 별말이 없다. 아니 이 카톡을 일곱 시간이나 기다렸다니? 조금 허무했지만 그래그래 답장 온 게 어디야. 내가 먼저 시작했으니 내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밖에


아아 넹ㅎㅎㅎ

부담스럽지 않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주말인데 모하셨어요?


아 저는 오늘 집 청소하고 책 봤습니다.

모양님은요?


저도 집 청소하고 카페 갔다 왔어요

무슨 책 읽으세용?


이렇게 카톡을 잘 이어간 거 같지만 충격적 이게도 카톡 답장이 한두 시간 뒤에 왔다. 맨 처음에 보낸 카톡은 늦게 확인할 수도 있는데 카톡 답장을 이렇게 늦게 하다니. 심지어 나는 카톡 오면 거의 5분 이내로 답장을 보내고 있는데?


카톡텀이 긴 걸 보니 아무래도 예의상 답장하시는 것 같다. 나에게 관심 없는 거 같으니 적당히 눈치채고 알아서 빠져야겠어. 물러설 자리도 아는 게 성숙한 30대 연애지.




실망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룸메에게 선톡을 보냈는데 카톡텀도 길고 별로 나에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답장 오면 잘자라고 하고 카톡 마쳐야 할 거 같아. 그래도 연락할지 말지 고민했는데 하고 나니까 후련해.


근데 룸메의 반응이 예상과 달랐다.


이 정도면 A씨도 너한테 질문도 하고 괜찮은 거 같은데? 카톡이야 네가 워낙 빨리 확인하는 편이고 A씨는 집에서 핸드폰 잘 안 보나 보지. 그렇게 안 끊어도 될 거 같아. 답장 내용 보면 A씨 반응도 생각보다 괜찮은데?


얼라라라 그래???????


꺼져가는 불에 땔감 집어넣는 소리다. 불이 다시 활활 타오른다. 하 그럼 더 적극적으로 해봐? 그래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그럼 시간 되면 만나자고 해볼까?! (분명 룸메의 의도는 이게 아닐텐데)


사실 나의 특기는 급발진이다. 이런 점이 운동, 자기개발, 새로운 도전을 할 때는 실행력이 좋고 적극적이라서 장점이지만, 연애에서는 특히 호감과 썸의 단계에서는 급발진은 아주 위험하다. 매번 저지르고 후회하면서도 늘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나. 내 인생은 저지름과 수습의 반복이다. 이런게 바로 사서 고생?



그 사이 A씨에게 답장이 왔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읽고 있어요.

벌써 일요일 밤이라니 너무 아쉽네요.


이제 마지막, 나의 화살을 쏠 차례다. 나는 고구려 주몽의 후예, 내 화살을 받아라~~ A씨.


그러게요 주말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A님 혹시 시간 되시면 따로 뵙고 싶은데

이번 주나 다음 주에 퇴근하고 시간 괜찮으세요?


과연, A씨는 뭐라고 답변을 하려나. 두근두근. 재밌다. 역시 연애 시작 전이 제일 재밌어.

아직 연애의 이응도 시작 된 게 없지만 그래도....흐흐



(나는 늘 좀 무한 긍정이다. 에휴)



카페에서 만난 보라색 꽃이 예쁘네요. 목화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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