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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최대 쇼핑을 하다

부동산 가계약금을 쏘다

by 위기회

나와 우리 쪽, 매도인 쪽 부동산 사장님 셋과 함께 매물로 나온 집에 갔다. 집 내부는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아파트답게 체리몰딩의 전형적인 구축 아파트 이미지였다. 20년 넘게 리모델링을 한 번도 안 한 것 치고는 깨끗하게 관리가 잘된 편이었다.


거실, 부엌, 방, 화장실 순으로 슥~ 하고 둘러보고 금방 나왔다. 크게 좋지도, 싫지도 않고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다. 내가 들어가서 살 집이 아니니까, 실내 인테리어 보다 매력적인 가격에 더 큰 메리트를 느꼈다. 그래서 집을 둘러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집을 보고 나와서도 뜨뜻미지근한 나의 반응에 사장님은 로열동에 확장도 다 되어있고 세입자가 집을 깨끗하게 썼다며 다시 좋은 점을 말씀하셨다.


집을 보고 나와 부동산까지 걸어가며 나는 혼자 고민에 휩싸였다. 이제 진짜 결심한 때인 것이다. 이 집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확신에 찼던 마음에서 내적갈등이 일었다.


아 이렇게 사도 되나? 이 가격이면 진짜 괜찮은 건가?

다른 매물은 안 보고 이 매물 하나만 봤는데..

위기회 자신 있어? 사도 되겠어?


일생일대의 최대 쇼핑 앞에서 망설여지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그 결정은 순전히 나의 몫. 잠시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자 부모님은 일단 더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때 청개구리처럼 어떤 확신이 생겼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에 누가 살 수도 있잖아! 이거 놓치면 더 후회할 거 같아!! 불쑥 나의 답정너 기질이 튀어나왔다.


부동산에 도착해서 매수자의 계좌번호를 받아 오냐는 부동산 사장님의 말에 덜컥 없던 용기가 생겼다. 답정너 짠순이 모드 발동! 밑져야 본전이다.


"천만 원 더 깎아 주시면 바로 가계약금 입금할게요"


그런 뒤 부동산 사장님이 옆 부동산(매도자 쪽 부동산)으로 가셨고, 5분도 안돼서 계좌 번호가 적힌 종이를 갖고 돌아오셨다. 얼랄라라? 진짜 이게 되네? 근데 이때 사람의 심리가 아 2천만 원 불러볼걸~ 하고 잠시 아쉬웠다.


이제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이다. 사실 여기서 발을 빼도 나는 아무런 손해가 없지만, 부동산은 여러 사람이 엮인 일이니 그러기도 어려웠다.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가계약금을 매도인 통장으로 입금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돈내산 아파트가 생기는 순간이다! 아직 찜. 내꼬. 침만 바른 정도지만.




가계약금을 보내고 경기도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얼떨떨했다. 그렇게 바라던 내 집 마련을 했는데 기쁜 마음보다는 얼타는 기분이었다. 아직 실감은 나지 않고 그냥 뭔갈 저질렀다는 열감이 남았다.


갭투자는 주택 담보 대출이 아닌 신용대출(마통)과 내가 모은 현금으로 하니까 대출 절차가 간단하다. 들어가 있는 전세금을 중도금으로 해서 중간에 매도자에게 추가로 돈을 보낼 일도 없다. 계약 일자에 부동산에서 만나서 나머지 잔금을 입금하면 끝!


돈만 있으면 갭투자는 정말 쉬운 거 같다.(라고 생각했다. 인생사가 그렇게 쉽고 간단할 리 가요) 계약을 마치고 셀프등기를 하려고 서류들을 꼼꼼히 챙겨서 세무서로 향했다. 셀프등기까지 마무리하고, 온라인으로 등기를 열람했을 때 내 이름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정말 마음이 후련해졌다.


내가 해냈어! 집 값아 올라줘라 올라줘!


내 집마련 뒤에 3개월 동안 취득세를 무이자 카드할부로 나눠 내느라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지만 최대한도로 뚫어놓은 마통이 있어서 생활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생애 첫 번째 내 집마련을 마친 뒤엔 오히려 부동산에 예전처럼 관심을 크게 갖지 않았다. 어차피 최소 2년은 보유해야 하니까 예전처럼 네이버부동산에서 시세와 매물을 체크하지도 않았다.




그런 뒤,

5개월이 지난 어느 날 또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 올 일이 없는데...?





+ 또 지나고 나니 보이는 것

가계약금을 넣고 일주일 뒤에 본계약을 진행하고, 계약일로부터 한 달 뒤에 잔금을 주고 등기를 쳤다. 보통 아파트 매매는 가계약을 하고 2~3개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행하는 것에 비해 아주 빠르게 마친 것이다.


당시 매도자는 급히 돈이 필요했고, 한 달 만에 2억을 마련할 갭투자자를 만났어야 했는데 딱 내가 적임자였다. 내가 바로 산 덕분에(?) 토요일에 네이버부동산에 올라왔던 매물은 월요일 밤에 바로 내려갔다. 내가 바로 사지 않았으면 그 매물은 정말 바로 사라졌을지 궁금하다. 과연 나 말고도 갭투자 하려는 사람이 있었으려나?


또 이제 와서 보니 엄청 엄청 급매 가격은 아니었다. 당시 실거래가는 6억 6천 정도였는데 나는 6억 2천에 샀으니 4천만 원 정도 더 싸게 산 것이다.


정말 헐값에 나온 급매를 잡는 것은 말 그대로 운인 거 같다. 또 이후에 배운 건 비싼 아파트일수록 급매의 가격 폭이 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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